비울수록 뜨거워진다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미니멀리즘이다. 사전적 의미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단순함에서 우러나는 미(美)를 추구하는 사회 철학 또는 문화·예술적 사조를 뜻하는데, 최소주의(最小主意)로 번역되기도 한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는 심플한 디자인의 물건으로 집안을 그럴싸하게 꾸며놓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최소주의’를 적용하고 실천하는 이들이다. 미니멀디자인의 상징 ‘애플’을 만든 스티브잡스도 서민적인 삶을 살며 전 재산을 기부한 탑스타 주윤발도 지독한 미니멀리스트로 유명하다.
나 역시,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감히 꿈꾼다. 마지막 이사를 계기로 1년이 넘도록 집안의 물건을 버리고 팔고, 정리하고 있다. 주로 당근마켓을 이용하고 있는데 가입당시 프로필의 기본 온도는 36.5℃로 설정된다. 사람 냄새가 나는 온도다. 중고물품 거래를 통해 이웃 간의 온기를 느끼는 플랫폼이라는 콘셉트인 듯싶다. 온도는 이용 빈도와 거래 후 평가에 따라 올라간다. 현재 나의 당근 프로필 온도는 63.4℃이다. 당근마켓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놀랄만한 온도다.
비울수록 뜨거워진다.
뜨거워진 건 나의 당근프로필 온도만이 아니다. 물건을 소유함에 대한 마음가짐, 일상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자신감, 삶에 대한 책임감까지 뜨겁게 차오른다. 역설적이게도 물건을 비우면 비울수록 물건은 더 소중해진다. 더 이상 많은 물건에 압도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 낸 여백으로 머무는 공간을 통제함으로써 진정 내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환경과 경제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며 책임감 있는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이렇게 ‘당근’이 나의 영혼을 살찌우고 있다.
미니멀라이프는 너무나 이상적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마치 다이어트와 같아서 죽을 때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덜어내는 것만큼이나 유지하는 게 더 힘들며 방심하면 요요현상도 찾아온다. 수행을 넘어 그야말로 고행의 길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 집에는 여전히 물건이 많다. ‘나는 미니멀리스트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갈 길이 구만리다.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단 한 뼘 더 정리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타령을 하던 욕심쟁이 맥시멀리스트의 삶은 조금 벗어났다고 자평한다.
하루하루. 조금씩 늘어가는 빈 바닥과 빈 벽, 비어있는 수납장을 볼 때면 복잡했던 머릿속까지 정리되는 느낌이다. 수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은 바로 이 맛에 미니멀라이프를 이어간다고 말한다. 방은 곧 그 사람의 마음상태라는 말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저 예쁜 쓰레기에 불과했던 온갖 물건들을 구석구석 채워놓고 살 땐 수시로 마음이 뒤숭숭해졌고, 물건에 먼지가 쌓여가듯 오해와 짜증들이 내 마음을 채워간 날이 많았다. 겉으로 보이는 큼직한 가구와 물건들 뿐 아니라 서랍 속 물건들의 가짓수를 줄여나가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도 한결 심플해졌다. 본질을 벗어나 비비 꼬아 생각하지 않게 됐고, 고민해 봐야 달라지지 않는 심난한 일은 가볍게 넘기게 됐다. 당연히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평균 1만 개의 물건을 소유한다고 한다.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인에 비해 1,000배나 많은 숫자다. 물건이 많을수록 삶은 더 복잡해지고 스트레스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나는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하거나 삶의 무게감이 느껴질 때, 나는 습관처럼 비워낼 물건을 찾는다. 그리고 비워낸다. 언젠가 그 공간에는 편안함, 여유, 기쁨, 진심들이 천천히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삶의 온도가 1℃씩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