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니멀 비기너의 인터뷰
m: 물건은 왜 자꾸 버리는 거야?
오: 결정적 계기는 유튜브에서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텅 빈 집을 보게 되면서부터야. 상당히 충격적이고 신선했어. 그리고 깨달았어.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저거구나! 그날부터 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지. 내가 이토록 마음이 힘들고 시간이 부족한 게 어쩌면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매일매일 정리하고 비워내기 시작했지. 편안한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위해서.
그렇다고 생각 없이 마구 버리는 건 아니야. 아직 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하게 팔거나 나눔을 하고,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하기도 해. 판매나 기부가 어려운 물건들은 아무리 비싸게 샀어도 과감하게 종량제봉투에 넣거나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서 처분해.
m: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
오: 처음엔 물건을 내보내는 게 쉽지 않았어. 처음 샀을 때 가격을 생각하게 되고, 물건에 얽힌 추억도 떠올랐지. 그렇다고 잘 사용하는 물건도 아니면서 말이야. 진짜 소중하다면 자주 꺼내 보고 사용해야 하는데, 집안 구석구석 자리만 지키고 있는 물건이 80% 이상이었어. 내가 써주기만을 기다리는 물건을 계속 방치하느니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는 게 오히려 물건을 아끼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어. 이제 필요 없는 물건을 처리할 때, 아깝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아. 오히려 쓰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 차서 숨 쉬지 못하는 공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비어있는 공간은 삶의 여유가 숨결처럼 드나드는 곳이거든.
m: 물건을 비워내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뭐야?
오: 삶이 단순해졌어. 물건이 많으면 집 안을 아무리 쓸고 닦아도 티가 잘 나지 않아. 그런데 물건이 줄어드니 정리와 청소가 간단해졌어. 정리할 게 없을수록 청소를 더 자주 하게 돼. 눈에 보이는 살림살이가 단출하니 생각도 심플하게 하게 돼. 과도한 시각적 정보가 우리 뇌를 많이 힘들게 하거든. 물건의 미니멀리즘이 생각의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져. 잡생각이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불면증도 사라졌어.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후로는 물건을 살 때 처분하는 순간을 먼저 떠올려. 그러다 보니 웬만해선 뭐든 선뜻 구입하기가 어려워. 자연스럽게 쇼핑을 하는 일이 줄었어.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은 이미 다 있거든. 그동안 내가 쇼핑을 했던 이유는 그 물건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 쇼핑이라는 즉각적인 보상책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덮어왔던 거지. 물건을 비우니 통장잔고가 조금씩 차오르더라고.
m: 미니멀리즘이 그렇게 놀라운 거였어?
오: 놀랍지? 나도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엔 몰랐어.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시간도 미니멀리즘이 가능해. 한 번에 하나씩. 시간을 큰 덩어리로 단순하게 사용하는 습관이 생겼어. 오전에 청소하고 책 읽기, 오후에는 아이랑 공부하고 산책하기. 이런 식이야. 사실 이 외에도 우리 일상에는 할 일이 정말 많지만, 부수적인 일들은 최소화하거나 그냥 안 해도 사는데 큰 문제가 없더라고. 식사나 샤워 같은 건 내가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아도 꼭 해야 하는 것들이니 계속 걱정하면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아우, 장 본 것도 없는데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너무 피곤한데 남편이 빨리 퇴근해서 애를 좀 씻겨주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이런 고민들로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로 했어. 저녁식사는 대충 냉장고 파먹기로 해결하고, 아이의 샤워는 하루정도 건너뛰고 자기 전에 세수와 양치질만 시키는 거지. 어설픈 완벽주의를 버리고 최소주의를 생활화하니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더라고.
m: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네?
오: 오히려 반대야.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까 쓸데없는 일을 더 안 하게 돼. 예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일을 동시해 하려고 했어. 멀티태스킹이 내 능력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야. (멀티태스킹은 효율적으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함정이야) 또 잠깐의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해서 구입하고, 네일숍을 예약하고, 친구를 만나려고 애를 썼어. 그럴수록 시간은 더 부족하고, 바쁘다는 느낌이 들었지. 그야말로 불안한 맥시멀리스트의 시간빈곤의 악순환이었지. 남는 시간에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자기계발이 자동으로 되는 느낌이야.
m: 그럼,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뭘 해?
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쇼핑을 했겠지. 그런데 이제는 필요한 물건이 줄어드니까 의미 없는 정보를 긁어모으지도 않게 되고, 세일이나 마케팅에 현혹되지도 않아. 최저가를 검색하고 할인쿠폰을 찾아 결제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니 시간은 더 여유로워지지. 미니멀리즘의 선순환이 이어지는 거야.
나는 이제, 남는 시간에 ‘나’를 만나.
m: 인생이 뭔가 심심할 것 같은데?
오: 전~혀. 오히려 충만해. 열심히 하던 SNS도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됐는데,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물어볼 정도야. (아마도 친구들이 상상하는 ‘무슨 일’이라는 건 안 좋은 일이겠지) 물건과 시간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 에너지를 빼앗는 사람과의 만남도 줄이다 보니 커피 값, 밥값, 꾸밈비도 줄었을 뿐 아니라 시간도 많이 아끼게 됐어. 예전에는 스케줄 없는 하루가 불안했는데, 지금은 나 홀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제법 편안해.
m: 생활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땐 어떻게 해?
오: 예전엔 액자나 쿠션 같은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해 분위기를 바꿨어. 그런데 그런 변화 역시 며칠이면 익숙해져. 지금은 생활공간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땐 물건을 더 없애. 공간을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 같아. 텅 빈 거실은 볼 때마다 새로워.
m: 물건을 전혀 안 사는 건 아니지?
오: 물론이지. 사실 나는 잘 만들어진 멋진 옷과 물건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야. 너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심사숙고 한 뒤 구입해. 단 조건이 있어. 원 인, 원 아웃!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린다.’ 이건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이 설파하는 미니멀 절대원칙이야. 순서를 바꿔 ‘버려야 산다’로 실천하려 노력 중이야. 사실 버리고 사려했으나 마음이 바뀌어 사지 않을 때도 있고, 하나를 사고 두세 개를 버릴 때가 더 많아. 그렇게 하면 큰 고통 없이 미니멀한 생활 규모를 유지 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물건을 사면 새로운 물건을 만나는 기쁨에 물건을 정리하는 기쁨까지 더해져서 인생이 훨씬 더 즐거워지거든.
“미니멀아, 나 지금 너무 신나.”
난 버려야 사는 여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