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과 함께하는 법
얼마 전, 아이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만국기가 휘날리는 운동장. 구석진 그늘에 앉아 콩알만 한 아이들의 움직임을 한참 지켜보는데, 학부모 줄다리기가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어기적어기적. 별다른 의욕 없이 걸어 나온 학부모들은 청팀, 홍팀으로 나뉘어 밧줄을 움켜쥔다. 목이 터져라 응원 중인 아이들은 대충 하는 엄마, 아빠를 용납하지 않을 기세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응차 응차. 거친 호흡을 따라 구호가 절로 나온다. 나도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줄을 당긴다. 두 번의 경기를 완승하고 아이에게 찡긋 눈짓을 보낸다.
승리의 달콤함은 아들에게 토스하고 패잔병의 몰골로 터덜터덜 운동장을 걸어 나온다. 한쪽 어깨에는 담이 오려 하고, 양손은 벌겋게 달아올라 덜덜 떨렸다. 결국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퇴근한 남편이 내 손을 보며 헛웃음을 친다. 아이는 엄마의 영끌파워를 직관한 후 내내 신이 나 있다. 나는 물집 잡힌 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게 말로만 듣던 영광의 상처구나.’
손에는 그 사람의 역사가 남는다.
기름때가 지워지지 않는 투박한 정비공의 손.
수시로 네일샵을 드나들며 케어 받는 고운 손.
손만 봐도 얼마간의 인생이 꿰어진다.
남편의 손은 나보다 희고 곱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절대 곱게 자란 남자가 아니다. 남편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듯 손도 그렇게 가꿔왔을 것이다. 굴곡진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단정하게 바로 세우며 살아온 사람. 남편의 고운 손은 그를 닮았다. 반면 나의 손은 늘 차고 거칠었다. 남편은 처음 내 손을 잡고 여자 손이 왜 이런가 놀랐다고 한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한겨울에도 핸드크림이나 장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첫 데이트에서 내가 그의 손을 잡으며 평온한 사무직 남성의 인생을 제멋대로 짐작했다면, 그는 까칠한 내 손을 잡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손을 잡고 걷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과 함께하겠다는 뜻이다. 거친 손처럼 다소 거친 당신의 삶을 내가 함께하겠소. 고운 손처럼 귀한 당신의 삶을 내가 지켜 드리겠소. 그러니 우리 서로의 삶을 맞잡고 온기를 나누며 걸읍시다.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그 대단함을 알기 때문이다. 긴 세월, 손을 놓지 않고 서로의 삶을 이끌며 인생의 후반부까지 걸어온 그들의 모습을 닮고 싶다.
아들의 손은 나를 닮아 거칠다. 불안할 때 손톱을 뜯는 버릇도 있다. 손을 보면 아이의 하루가 보인다. 저녁마다 작은 손톱깎이로 손톱 주변을 정리해 주며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꼭 안아준다. 어른 손가락 하나만 잡아도 손아귀가 꽉 찼던 아기 시절, 행여 엄마 손을 놓칠까 꽉 움켜쥔 통통한 손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던 아이의 삶은 어느덧 부모와 비슷한 크기로 자라난다. 아이의 손을 영원히 놓고 싶지 않지만, 놓아줄 땐 놓아줘야 한다. 언젠가 다시 손잡고 걸을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나는 이제 나의 삶을 가꾸듯 손을 가꾼다. 흉이 지지 않게 조심하고, 손톱이 길지 않게 자주 다듬고, 핸드크림을 발라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하려 애쓴다. 화려하고 부산한 손보다 차분하게 움직이는 깨끗한 손이 더 낫다. 누군가 내 손을 보고 나의 삶을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저녁 바람이 선선한 요즘, 아이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