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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일기

버텨낸 자리에 남은 응원

by 이은
문득, 알지도 못하는 '출근이 퇴근'의 오늘을 응원하고 싶다. 그녀의 닉네임이 내 마음을 잡아끈 건, 그 말이 곧 오래전 나의 언어였기 때문이기도 해서다. 따뜻한 무지방 우유와 은은한 커피가 하루의 시작에 잠시나마 미소를 선물해주었기를, 최소한의 숨 쉴 구멍은 되어주었기를. 고카페인이 필요할 만큼 피곤한 게 아니기를 바란다. …피곤은 하더라도 오늘 하루 참 잘 보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를, 주머니 속 핫팩을 꽉 쥐며 감히 기원해 본다. 퇴근을 꿈꾸며 출근하던 지난 시간의 내게 이런 응원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하루에 한 잔 정도는 커피를 덜 찾지 않았을까.

ㅡ<표현의 방식> 중 '커피-달콤 쌉싸름한 당신의 닉네임'



어제 어쩌다 퇴근시간의 1호선 전철을 타게 되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해안가로 밀려가듯, 첫 발을 떼기도 전에 열차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누군가 앞으로 맨 가방이 내 허리에 맞닿아 있었고, 누군가의 어깨와 등이 나와 밀착되어 있었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끈이 흘러내려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내 양 팔은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던 와칸다족처럼 엑스 자로 가슴팍에 곱게 모였고, 내 주변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무얼 보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까지 보였다. 그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래전 전철을 타고 출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한 정거장 뒤로 가면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똑같이 만원열차라 하더라도 앉은 것과 서있는 것은 다르다.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비록 공기는 무겁더라도 버겁지는 않았다. 1호선을 타고 가다 신도림역에서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할 때, 열차는 목에 걸려있는 음식물을 토해내듯 사람들을 밖으로 던져버렸다. 열차 밖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의 출근길은 그 충동을 억누르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문득, 다른 각도로 이 순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 허리에 맞닿아 있는 가방이 나를 받쳐주고 있었고, 나와 몸이 닿아있는 사람들이 나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지지해 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 같은 입장, 다 같은 마음일 거다. 결국 각자의 자리를 향해 가는 거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다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버틸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수고했어요.', '조금만 더 힘내봅시다.' 하고.


'출근이 퇴근'의 닉네임을 사용하던 그녀를 응원했던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만원열차에 몸을 실은 이들을 응원한다. 어제는 끼여 서있었다면 오늘은 앉을 수 있기를, 서더라도 손잡이를 잡을 수 있기를, 앞사람의 머리카락이 코를 간지럽히지 않기를. 그리고 부디, 끝내주게 달콤한 주말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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