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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Jun 18. 2020

노동의 '핵아싸'들

누가 그들을 '핵아싸'로 만드는가

동기들 사이에서 ‘핵인싸’였던 그 애는 목소리가 정말 컸다. 항상 누가 마이크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그 큰 목소리에 홀리기라도 한 듯 언제나 그 애 근처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핵인싸가 있으면 ‘핵아싸’도 있는 법. 동기 카톡방에서만 보고 실제로 얘기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핵아싸’ 동기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애의 목소리를 몰랐다. 목소리가 굵은지 얇은지, 큰지 작은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게 동기 아닌 동기로 몇 년을 보냈다.


노동의 장에도 노동자 아닌 노동자, ‘핵아싸 존재한다. 독서실 총무는 요즘 시대에 알바 나부랭이도  받는 최저시급을  받는다. 독서실 사장에게 총무는 알바생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버는 ‘장학생이기 때문이다.  5 9시간씩 독서실에 생기는 모든 일들을 도맡아 하지만, 월급 대신 학습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15 원을 받는다. 독서실 총무가 노동계의 영원한 핵아싸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지 이들의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이들목소리 없는 ‘핵아싸 만든다. 노동의 대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편하게 앉아 자기 공부하면서 설렁설렁하는 일을 진정 '노동'이라고   있냐는 것이다. 핵아싸가 갑자기 말이 많아지면 그는 의심받을 것이다.   그동안은 우리랑 말도  하고  어울렸대? 혼자 다니기가 많이 힘들었구나. 지도 인싸 대열에   껴보려고 애쓴다 애써... 독서실 총무들의 문제제기도 항상  저의를 의심받는다. ‘열심히 일해서  버는핵인싸의 길을 포기하고 자발적 아싸의 삶을 택했으면서  이제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리냐는 것이다.


‘노동다운 노동’이라는 개념이 노동의 장에서도 ‘핵인싸’와 ‘핵아싸’를 만든다. 편하게 앉아 덜 집중하는 일보다 열심히 뛰어다니거나 머리를 쓰는 일만이 노동이라는 개념 말이다. 핵인싸의 삶이 행복한 만큼 목소리조차 빼앗긴 핵아싸의 삶은 비참하다. 문제는 이 비참한 핵아싸를 양산하는 개념이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절대 진리가 아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노동’의 개념이다.


이 개념, 즉 노동의 언어는 노동시장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이 독점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노동다운 노동’이라는 언어엔 공교롭게도 고용주의 시각이 내포돼있다. 고용주는 성실한 피고용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00다운 00’이라는 언어는 제기해도 되는 문제와 제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든다. ‘여성다운 여성’, ‘가족다운 가족’, ‘엄마다운 엄마’, ‘가장다운 가장’이라는 말들이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는 핵아싸들을 그간 얼마나 많이 양산했는가. 실체가 모호한 이 말들의 임의성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것에서 노동자의 선량한 의도와 성실성은 배제돼야 한다. 노동을 둘러싼 관념에서 벗어나 노동의 실체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자아실현의 통로이든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든 우리가 모든 노동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독서실 총무가 ‘자기 공부를 하면서 설렁설렁하는 일들’은 실질적으로 한 독서실이 운영되게 만든다. 독서실의 회원들이 불편함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회원이 들어오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그 지역에서 독서실이 담당하는 기능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연결고리로서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노동의 값어치는 ‘시간’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내가 멋진 직업인으로서 일을 했든 단순히 돈이 필요한 알바생으로서 일을 했든, 손님이 많아서 바빴든 없어서 한가했든 내가 내 시간을 써 만들어 낸 노동의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땀 흘리지 않았다고, 편하게 앉아서 일했다고 노동에서 ‘핵아싸’로 배제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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