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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Dec 03. 2021

서울의 다세대주택들

'처리'되면 안 되는 것

이제 서울의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은 대충 지역별로 다 가본듯 하다. 서울의 서쪽(강서구)과 북쪽(도봉구)에 이어 남쪽(관악구)까지 찍었다. 다세대주택이 모여있는 곳의 특징, 우선 언덕에 있다. 그리고 길이 서로 뚫려있지 않고 막혀있다. 바로 뒤의 건물을 가는데 지도에서 안내해주는 돌아가는 길대로 가지 않으면 사방이 막힌 곳을 마주하게 된다. 뻗치기를 하기 위해 쭈그리고 앉으면 어디선가 하수구 냄새가 난다. 씨유, 지에스 같은 편의점은 절대 없다. '럭키 할인마트' '정연 슈퍼마켓' 같은, 요즘에도 이런 슈퍼들이 남아있네, 하는 가게들이 그 동네들엔 블록마다 있다. 영혼 없는 알바생 대신, 그 동네에서 수십년 장사한 인심 좋은 슈퍼 사장님들이 있다. 이런 사장님들한테 취재한다고 뭘 물어보면, 대답도 굉장히 잘 해주신다. 사실은 정말 도움이 됐는데, '도움이 못돼 미안하다'고 사과하신다. 


그리고 사람이 죽는 사건과 사고는 꼭 이런 동네들에서 많이 난다. 사람이 더워서 죽고, 술먹다가 시비붙어서 죽고, 불이 났는데 탈출하지 못해 죽는다. 너무 쾌적한 광화문과 마포만 왔다갔다 하다가 취재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동네들을 가면 괴리감에 좀 괴로울 때가 있다. 더럽고 냄새나고 끔찍한 현장에 깔끔한 옷차림으로 가 있는 내가 낯설기도 하다. 이건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건가, 아님 그냥 이용하는 건가 고민이 들 때도 있다. 그치만 고민할 시간 없이 기사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그럼 또 오늘처럼 정신없이 인근 슈퍼 사장님, 부동산 사장님, 폐지 줍는 할아버지, 통장님 등등등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죽은 사람에 대해 물어본다. 


지난주 화재로 지체장애인이 집 안에서 사망했다는 한줄짜리 스트레이트 기사 보자마자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그 혈기로 주민센터에 전화하고 전장연에 전화하고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이 사람의 죽음을 끼워맞추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건 알아보기 위해 3일동안 크롬창을 닫지 않았다. 20개도 넘는 창들이 내내 열려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한 기사를 부장이 주요기사로 올려주고, 1면에 실어주는 회사라서 다행이다. 


우리끼리 기사를 '처리한다'고 많이 말하는데, 취재를 마치고 동네를 빠져나올 때면 기사 뿐만 아니라 모든 걸 그저 '처리하고'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동안 내가 들은 고인에 대한 이야기들, 고인이 남긴 흔적들, 고인을 안타까워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 모든 것들을 기사 몇 줄로 다 처리해버리고 훌훌 털고 나는 또 나의 쾌적한 거주지로 돌아온다. 오늘 집에 오는 버스에선 불이 났는데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고인의 모습이 자꾸 상상돼서 괴로웠다. 물론 이 괴로움도 하루를 못가겠지. 처리되고 끝나면 안 되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은데, 계속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쓰면 조금이라도 이 업보를 상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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