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입니다. 뻥이에요. 승진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그리고 오늘. 제가 승진한 것 같은 기분이 든 순간이 있었어요. 기분 좋았던 순간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어이 없던 순간이라 자기 전 끄적여 봅니다.
(브런치에는 보통 일기처럼 글을 적어내려가서 높임말을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멋대로 높임말을 쓰고 싶어지네요.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실태를 고발하고 싶어서 그런가봄..)
리더 A는 자기 밥 그릇을 못 찾는 사람입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 윗 리더 B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B는 승진하며 A도 승진시켜줬어요. 그때까지 B는 A가 그렇게 트롤짓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거에요. 옆 조직들은 다 리더들이 산하 직원들의 목에 줄을 걸고 질질 끌며 조직을 운영하는데, A는 그러기는 커녕 산하 직원의 등에 업혀 갔거든요.
어찌됐든 A가 만만치 않은 트롤이라는 걸 깨닫게 된 B는 A의 산하 직원에게,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도 그 자리에 A를 앉힌 걸 후회하고 있다면서, 그래도 2년은 지켜봐야하지 않겠냐고. 자기가 싸지른 똥을 재빨리 치울 생각은 안하고 그냥 두겠다는 겁니다. 뭐, 방법이 없겠죠. 거름으로도 못 쓸테니까요.
B는 기분파이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대놓고 면박 주는 인물입니다. 자기가 앉혔는데, B는 A를 대놓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악순환이 반복돼요. A는 B가 무서워서 더 트롤짓을 하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B는 더 A를 싫어하고, A의 트롤짓은 더 심해지고.
얼마 전이었어요.
A가 회의실로 같이 보고서 작업을 해야한다며 절 부르더라구요. 들어갔어요. 들어가면 일을 지시해줘야하지 않겠어요? 아무 말도 안하고 노트북 화면을 째려보면서 인상만 찌푸리더라구요. 내가 궁예도 아니고, 그 놈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요? 뭐하면 되냐고 물었죠. 좀 전에 들어갔었던 보고를 녹음했다면서 녹취본을 듣고 있으라 하더라구요. 장장 43분 짜리였습니다. 개샠.... 욕이 나왔지만, 필요한 부분만 골라들었어요. 그래도 30분이 걸리더라구요.
예전에 친구가 어시로 일할 때 인터뷰 녹취본을 푼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었는데,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인터뷰 녹취본이면 몰라도 나는 왜 보고 녹취본을 풀고 있는걸까? 보고 들어갔던 사람이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요즘 녹음하는 거에 맛들렸는지, 녹음만 하고 음성파일만 띡 던져주더라구요. 보고 들어가서 뭐 열심히는 적는 것 같은데, 낙서만 하고 나오는건지..
어찌됐든 녹취본을 듣고 해야할 일들을 정리했어요. 그래서 공유했습니다. 할 일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뭐하면 되냐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녹취본대로 자기가 보고서를 잘 썼는지 확인해달라고 하더라구요. 맞게 잘 쓴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B에게 보고갔다오겠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러라고 했어요. 그리고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 지 리더야, 뭐야? 아무도 모르게 저는 승진을 한거였죠.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오랜만에 회사에서 바쁘게 산 날이었습니다. 데드라인이 정해진 작업을 해야했거든요. A는 제 때 공유해주는 게 없어요. 제 때 공유한다 싶으면 뭔가 하나 빠져 있거나 아니면 녹취본처럼 통째로 던져줍니다. 통째로 던진 걸 알아서 분리수거해서 건져내야해요.
오늘은 생각보다 빠르게 정보를 공유해줬으나 약간 애매한 수위로 공유를 해줬더라구요. 그래서 빨리, 그리고 제대로 좀 공유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정보 받은 지가 얼마 안됐다면서, 이번은 빠르지 않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번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여태껏을 말하는 거라고 했죠. 그러니까 과거를 잊어달라고 하더라구요. 앞으로 변할건데 과거를 왜 말하냐고. 또 한 번 제가 리더가 된 기분이었어요. 실수한 직원이 '이번은 달라요! 앞으로의 저를 지켜봐주세요!'라고 다짐하는 상황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지켜보려고요. 얼마나 변하는 지.
변화 1일차. 오늘부터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