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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숲 Mar 12. 2023

너한테 마지막 기회를 줄게

너한테 마지막 기회를 줄게.


나는 이번 주 지옥 같은 한 주를 보냈어. 갑자기 왜 편지를 쓰냐고? 너 때문에 힘들고 화가 나지만, 움직일 동력을 만들어야 하니까. 너에게 편지를 써보면서 네가 나에게 한 짓들을 곱씹으려고. 그래서 분노 게이지가 채워지면 연료를 태워서 탈출할 때 쓰려고.


넌 원래도 무능하고 이상했지만, 요 몇달 간은 상식 밖의 행동을 많이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서의 네 행동을 지인들에게 전하면 다 믿질 못해. 일부러 그런 척 하는 거 아니냐고. 근데 네가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니.. 척 할 정도로 약삭 빠르고 영리한 인간일리가. 그냥 넌 멍청하고, 이 상황을 어찌할 바 몰라서 지금 그 모양 그 꼴인거지.


너의 무능력은 너를 면밀히 관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야. 널 만난 지 한 달도 안되어서 그건 알 수 있었으니까. 이 쯤되면 눈치도 보이고 자존감도 떨어질만도 한데 빨빨거리면서 잘 다니는 거 보면.. 정말 멘탈이 대단한 사람이야? 아, 그래서 이런 조직에서 눈치 없이 버티는 건가. 아, 말을 잘 못 했어. 버티는 건 우리들이 하는 거구나. 그냥 너 같은 이런 조직과 핏한 사람인 거지.


난 얼마 전에 네 덕분에 마음을 정했어. 고마워. 너도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테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거든. 너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인도적으로, 도의적으로 마지노선을 정했다. 고맙지? 고마워해야 할 거야.


이제 힘도 없고, 의지도 없어진 내가 너를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1부터 100까지 나열하려니 힘이 빠지네. 막상 생각해내려니 생각도 안나고 말이야. 그냥 너에 대한 감정은 증오만 남았어. 증오라는 감정이 생긴 원인의 시작과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감정은 뚜렷해. 그게 내가 떠날 이유야.


그래도 최근에 있었던 일은 생생히 기억이 나. 이번주였지? 넌 멍청해서 기억이 나는 지도 모르겠다. 아마 모를거야. 이 세상에서, 이 조직에서 네라 가장 힘들다고 징징대니까.


이번주였어. 연초부터 미루던,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다루지 않던 일이 시작되었지. 역시나 너랑 일하니까 정말 갑갑하더라. 네가 그냥 조직에서 잠깐 퇴장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 취소. 잠깐 아니고 그냥 영영. 업무를 릴리즈 하는 디데이가 정해지자 나는 이제 좀 끝나나 싶었어. 내용들을 다 넣어야 한다는 둥, 방향을 수정해야한다는 둥, 적어도 그런 얘기들은 하지 않을테니까.


근데 안일했지. 내가 이 조직을 너무 쉽게 봤어. 너뿐만이 아니라 이 조직 자체도 떠나야 하는 이유였던 것을. 대체 보고를 마친 사람에게 재보고를 왜 하니? 안 그래도 시간 없어 죽겠는데.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 네가 무서워 하는 인간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듣는거니, 왜. 그래서 우리들이 두번, 세번 아니 백번을 똑같은 일하면서 시간이 낭비되는 거 아니야.


추가로 네가 받들어 모시는 인간에게 보고를 2번 더 하고, 결국 보고가 끝났지. 이제 그 다음날에 릴리즈만 하면 됐어. 하지만 그 전에 미션이 하나 있었지. 릴리즈에 대한 일부 구성원에게 사전 안내. 네가 시간을 낭비할 때 난 뭘 하고 있었을까? 네가 의사 결정만 내리면 바로 안내할 수 있도록 안내글을 쓰고 있었지. 안내글 검토에 너는 또 시간을 엄청 쏟더라. 그래, 쏟을 수 있지. 시간이 너무 가자, 난 한 마디 했었지. 금방 못할 거 같으면 볼 일이 있으니 볼 일 보고 다시 돌아와서 안내하겠다고. 근데 넌 금방한다고 했잖아? 그 때 그 말을 믿은 내가 병신이었어. 넌 금방 못했고, 나는 볼 일도 못 봤지.


볼 일이라.. 난 그 때 퇴근을 하고 병원 야간 진료를 가려고 했었어. 부랴부랴 가니까 접수 마감 됐더라. 그 전 날부터 계속 아팠었기에 엄청 화가 났어. 병원 못 간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니까.


화를 다스려가며 집에 갔어. 집에 있는 데 너는 전화를 했지. 난 전화를 받지 않았어. 네 새끼 꼴도 보기 싫었거든. 내가 안받으니 메시지를 보냈더라? 안내글 수정사항이 있으니 전화하라고. 난 메시지로 말해달라 했지. 네 새끼 목소리 듣고 싶지 않았거든? 근데 전화로 해야할 이야기라고, 굳이 굳이 전화를 하라고 했지.


전화를 했지. 다짜고짜 하는 말이 일찍 출근하라는 말이었지. 아, 그 전에 몇시에 출근하냐는 말도 했구나. 인사 시스템에서 다 조회가 가능할텐데도, 그리고 네가 업무며, 직원들 근무시간이며 파악 못하겠다고 매 주 써내라 한 파일에서도 다 적혀 있는데도. 넌 전화를 하자마자 첫마디가 내일 몇시에 출근하냐는 말. 바보 같아서 진짜 할 말이 없어지더라.


그리고 또 한 번 느꼈지. 너는 메시지 전달과 소통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결론이 일찍 출근하라는 말이더라도, 상황 설명을 먼저 해야지. 상대방을 먼저 납득시키고 지시나 부탁을 해야지. 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잖아.


하지만 나는 너에게 말하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네가 들어쳐먹을 사람도 아니고. 결국엔 일찍 출근하기로 했고. 내가 전화 말미에는 상황은 이해가나, 이런식의 통보는 불쾌하다 했지. 게다가 병원만 잠깐 갔다오겠다는 말도 거절당해서 병원도 못 간 애한테. 그러자 너는 뭐라고 했니.


"진료도 못 받았다고?"


이 한 마디가 끝이었지. 사과도 한 마디 없었네. 그게 네 모습이고, 인성인거지. 사과를 하는 사람이었으면 네가 나의 떠날 이유가 되었겠니.


자료는 수정은 하겠다며, 안내만 다시 하라던 네 말을 믿은 나는 역시 병신이었어. 다음 날 일찍 출근해서 안내하기 전에 네가 수정한 자료를 다시 손봐야했지. 그리고 네가 무서워 하는 그 인간이 수정하라고 했던 부분을 수정하지 않아서 걔가 나한테 전화하게 하고 말이야. 네 덕분에 아침부터 듣기 싫은 목소리를 휴대폰 너머로 듣게 됐네.


이 날 하루는 정말 고통이었어. 넌 무슨 아바타처럼 지시하더라. 지시를 할 때는 좀 똑똑하게 해야 하는데, 넌 잘 하지도 못하니까. 너 뿐만이 아니라 네가 무서워하는 걔도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서 일 시키고. 니네들은 계획이라는 게 없는 충동적인 사람이야. 모르고 있었다면 이 참에 알아두길 바래. 니네들 존나 대책 없으니까.


오후 내내 말도 안되는 지시 했던 것도 기억하니? 여러 참석자들 겹치는 빈 일정 알아내서 회의 날짜를 잡으라고 하질 않나, 존나 이상하게 아이디어 생각해내서 일을 시키질 않나. 그 때 너무 죽겠더라.


그래서 옥상에 올라갔어.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벽에 기대어 생각을 해봤지. 이 대로는 못 견디겠다고. 그래서 나만의 마지노선을 정했어. 탈출 마지노선. 난 떠날거야.


너한테 주겠다는 마지막 기회는 마지노선까지 남은 기간이야. 그 기간 동안 각성하든지, 더 어리석어 지든지. 네 맘이야.


네 맘대로 행동해.

나도 내 맘대로 행동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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