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면접은 까 보기 전까지는, 몰라.
[칼럼] 문화를 업(業)으로, 예술은 취미로 (4)
#5 면접은 까 보기 전까지는, 몰라.
떨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한다. 청심환을 삼키거나, 본인만의 징크스를 깨기 위해 증표를 지니고 다닌다거나, 중요한 일이 있기 5분 전엔 꼭 화장실을 다녀온다던가 긴장되는 상황을 마주하면 어떤 사람이든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 마련이다. A는 그 모든 것들을 처리하고 왔음에도 지금 이 자리가 너무나 불편했다. 최대한 편한 마스크를 쓰고, 또렷한 눈빛을 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1년에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하는 정장부터 차가운 공기까지 너무나도 불편했다.
누군가에게 일생일대의 순간일지라도 면접관들은 이미 몇 개조의 질문 답변을 마친 상태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면접이 시작되자 진행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면접관 중 한 사람이 A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을 꺼낸다.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준비해온 만큼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왼쪽부터 차례로 자기소개를 시작해주세요."
왼쪽부터 시작하면 첫 번째 순서에 앉은 A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긴장감을 누르기 위해 만약 문이 오른쪽에 있었다면 오른쪽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푸념을 머릿속으로 잠시 하며 준비해온 자기소개를 떠올린다. 가장 첫마디를 무엇으로 할지 준비하기 위해 고민했던 일주일 간의 시간이 떠오른다. 자기소개에서 임팩트를 주지 못하면 안 된다는 조언부터, 최대한 담백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면접 전문가의 유튜브 영상을 보며 '그냥 될 대로 되어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첫마디를 떼어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예술을 취미로, 문화를 업으로 삼기 위해 지원한 A입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과 활동을 하여 이러한 역량을 갖추었고..."
마스크 안을 뚫고 5M 밖에 있는 상대방에게 말을 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A는 크고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후에는 학교에서의 전공이나 활동들, 문화예술과 관련해 준비했던 활동들을 차례로 이야기한다. 말하는 도중에 1분이 끝나버리고, 준비해온 내용의 1/5 정도는 말하지 못한 것 같다. 이어서 차례로 앉은 사람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미 동종업계에 몇 년간 몸담고 있는 사람들부터, 전혀 색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리고 A는 자신이 첫마디에 당차게 외친 "예술을 취미로, 문화를 업으로"는 이 업계에서 일하기 위한 거의 모두가 갖고 있는 정체성임을 1분 간의 자기소개에서 깨닫는다. 이에 더하여 그들은 "문화를 업으로" 삼기 위해 준비한 다양한 역량과 자질들을 소개하며 화려하게 자기소개를 마친다. A는 자신의 아킬레스 건인 경험의 부족을 처절하게 느끼면서 이후 답변에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B님은 이전 회사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실 것인지..?'
'C님은 동종업계가 아닌 본사로 이직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예전에 했던 사업과 자신의 역할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자기소개는 순서대로 끝났지만 A에게 답변할 기회는 순차적으로 오지 않았다. 본인의 자기소개가 면접관들의 궁금증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에서 쓴맛을 느끼며 거의 마음속으로 포기할 즈음, 하나의 질문을 받는다.
"A님은 문화와 관련된 여러 글을 써오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글들을 써오셨나요"
다만 그 질문이 상상도 못 한 질문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A는 바로 몇 가지를 떠올리며 어떻게 답변할지 5초 안에 정리해야 했다. 2달간 썼던 유럽 여행기나, 공연이나 전시 리뷰, 최근에 공부하며 작성한 문화 관련 칼럼들을 떠올리자마자 이제 답변을 해야 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다양한 글을 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럽 여행에서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를 찾아다니며 여행기를, 국내에서는 공연과 전시를 보고 리뷰를,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한 문화예술의 위기와 대응정책에 대한 글을 써왔습니다."
잘 답변한 걸까? 생각하는 와중에 다른 면접관의 질문이 재차 이어졌다. A는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다른 분들에 비해 현직 경험이 없으신데, 본인이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A와 함께한 면접 조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이직을 준비하거나, 다른 곳에서의 업무 경험이 있었다. 아마 이번 면접에서 A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하였을 때 약점을 잘 보완하고 강점을 어필할 수 있어야 했다. A는 조금은 간단한지만 무덤덤하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성장하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문화와 예술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전 질문 이후 다른 지원자에 대한 추가 질문이 이어졌고, 각자 마무리 질문을 받는 타이밍임을 확신했다. 이렇게 원론적인 질문이라니, A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다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이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이라면, 문화는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이 각자의 방식으로 모인 현상이나 삶의 양식, 사회 그 자체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나니 시원섭섭한 감정이 남았다. 솔직히 글을 쓰는 건 자신이 있었지만, 써놓은 글을 말로 하는 것은 어려웠다. 조금 더 열심히 준비해볼걸, 조금 더 잘 말해볼걸 하는 후회가 남으면서도 할 만큼 하지 않았나 하는 모순적인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사람들의 위로 속에 '면까몰'이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다. "면접은 까 보기 전까지 몰라"라는 면접을 마치고 온 취준생들이 하나씩 쥐고 나오는 칭호 같은 이 말을 되뇌다 보니, 정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A의 결과는 아직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금의 A도 당시 면접을 생각하면 남들보다 운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요즘은 운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고 있지 않은가. 복권이나 사행성처럼 본인의 노력과 역량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 것들을 제외한다면, 어쩌면 모든 기회에 있어서 운과 한 사람의 노력은 언제나 함께 있다. 노력의 과정을 열심히 해온 사람에게는 그 운을 잡을 힘이 더 강해진다거나, 어쩌면 운이라는 녀석은 준비된 자에게만 손을 내밀 수도 있다.
혹여 누군가 이쪽으로의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면 면까몰(면접은 까 보기 전까지 몰라)이든 운이든 조금 더 중요한 건, 어쨌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에 대한 준비(이것은 이후에 조금 더 다뤄보도록 하자)와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일을 넘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과정까지 좋아진다면 분명 매력적인 기회와 운이 다가올 것이다.
이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