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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다 Jun 04. 2019

나폴리에서 보내는 엽서

5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돌아온 도시에 대해

플레비시토 광장을 행진하는 군인들


6일간 돌아다닌 나폴리를 한 장면으로 요약한다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자, 조금의 고민도 없이 벨리니 광장이 떠올랐다. 구시가지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저녁시간을 즐기기 좋은 곳이라던 광장. 그러나 내 발길이 우연히 닿았을 때 벨리니 광장은 한낮이었다. 실외 테이블이 여러 개 있긴 한데, 내 막연한 상상과 달리 화끈한 나이트라이프의 명소 같진 않았다(낮이어서였을까?). 중앙에 오페라 작곡 빈첸초 벨리니의 동상이 서 있고, 동상 주변에는 지표면 아래의 오래된 돌덩이들을 볼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난간 아래에는 그리스 시대의 유적이 있었다. 나폴리에서 그 때까지 보았고 그 후로 보게 될 고대의 흔적들이 다 그렇듯, 무슨 용도의 어떤 건축물이었을지 한눈에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회색 돌벽이 보였다.

나폴리는 계속 그런 식이었다. 맨 위, 시민들의 일상. 나와 가장 가깝지만 막상 다가가기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이번 여행에서는 그 구체적 목적의 특성상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부분. 그 다음으로, 일상 사이에 끼워진 온갖 기념물들. 나폴리는 역사를 언급하는 데 게으르지 않은 듯했다. 5박을 묵은 숙소 근처의 번화가, 톨레도 거리에서는 최소 세 개의 안내판이 이 거리와 관련된 명사들을 기리고 있었다. 지하철 역의 이름도 그렇다. <살바토르 로사>와 <반비텔리> 같은 역이야 사람 이름을 딴 것이니 꽤 흔하지만, <콰트로 조르나테(4일)>역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콰트로 조르나테란 2차대전 말기에 독일군에 4일간 맞서 싸운 나폴리의 시민봉기 이름이다. 그렇다면 <메달리에 도로(금메달)>는 뭔가? 어떤 금메달을 기념하는 거지? 나는 지하철 노선이 열 개를 넘는 서울에서 왔지만 이런 식으로 이름이 지어진 서울 지하철역은 지금 당장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밀라노나 로마에 이런 지하철역 이름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오페라 <노르마>의 작곡가, 나폴리에서 수학하고 활동했다는 벨리니 동상과 기념 광장이 있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


그리고 발 밑의 유적. 나폴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운 식민도시 네아폴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파르테논 신전 같은 것이 번듯하게 서서 그 장구한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진 않는다. 여러 유적에서 만난 나폴리의 긴 과거는 자기들끼리 어지럽게 섞여 있어 세심한 눈과 얼마간의 지식을 필요로 했다. 개중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카스텔 델로보일 것이다.



카스텔 델로보에서 내려다본 바다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이 곳은 아무 볼 것이 없다는 이유로 구글맵 평점에서 몇몇 한국인 관광객의 혹평을 받았다. 델로보는 다른 성이나 궁전들과 달리 아무런 전시 시설이 없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준비 없이 온 관람객이 이 성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아내려면, 이탈리아어 옆에  영어가 병기된 안내판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쓱 훑어서는 안 된다. 영어의 경우,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번역은 아닐 때가 많으니 세심하게 읽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안내판 사진 속 모습이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직접 찾아야 한다. 사진 속 지점이 여기라고 빨간 화살표를 놔주긴 커녕, 평범한 출입금지구역처럼 막아버리거나 문을 잠가 버린 경우가 적잖 때문이다.


그렇게 공을 들이 비로소 델로보의 위치에 한때 있었다던 고대 로마 시대 저택의 흔적이 보였다. 많이 낡고 닳았지만, 새 성의 일부로 편입돼 지금도 윗층의 하중을 나눠지고 있는 흰 기둥 몇 개였다. 성의 내부에 있는 오래된 예배당도 마찬가지다. 이 안에 비잔틴 시대의 아주 오래된 기둥들이 몇 개 남아 있다고 안내판은 전한다. 하지만 예배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관광객의 관심을 끌 만한 표식도 없다.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중간 복도의 유리창 너머에서 십자가와 의자 너머로 낡은 기둥이 보이면, 그제사 내가 뭔가 찾았음을 알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폰타넬레 묘지의 어느 망자에게 봉헌된 물건들


물론 모든 유적이 이런 식이지는 않다. 카포디몬테 박물관의 벽을 빼곡히 채운 온갖 명화와 보물, 혹은 대성당과 제수 누오보 성당의 바로크적 화려함은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건, 나폴리는 켜켜 쌓인 수직의 도시 같았다. 바다 근처에서 시작해 점점 산비탈을 타고 오르며 확장된 도시의 지리적 형태가 그랬다. 사후세계를 천국과 지옥이라는 양극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중간층, 연옥의 영혼들에 누구보다도 관심을 가진 종교관이 그랬다. 이 도시가 돌이라면 줄마노처럼 층이 진 원석이고, 음식이라면 크레페 케이크일 것이다. 베수비오와 바다 사이에서 퇴적된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 없이, 태양과 마피아와 피자 정도만을 떠올리며 도착했다면 아주 만족스럽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자가 아무리 맛있대도 일주일 내내 피자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테다. 그리고, 우연인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있었던 6일간 하루종일 맑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 해는 끝까지 귀했다.


나폴리의 두꺼운 퇴적층은 승리와 번영으로 번쩍이기도 하지만, 패배와 고통의 어두움 또한 적잖게 섞여 있다. 지진과 전염병, 번성과 쇠퇴, 왕조교체. 전쟁과 정복과 독립, 다시 복속과 전쟁. 그렇기에 나폴리는 과거나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에게 부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사건과 곡절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은 이 도시의 역사는 위대한 생존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 영광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우기 위해 돌아봐야 할 사건과 곡절들이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이 낯설거나, 애당초 영혼의 고갈을 메우고 싶어 온 온 여행자라면 금세 진저리치고 말 것 같다. 그들에게는 당장 인근의 아름다운 휴양지, 즉 카프리와 아말피와 소렌토와 포지타노로 떠나는 처방이 필요할 것이다.



비토리아 광장 인근의 풍경


나는 카세르타 왕궁에 다녀온 한나절을 제외하고 6일 내내 나폴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시의 악명과 달리 신변에 위험을 느끼거나, 소매치기나 택시 바가지요금 등 관광객 대상 범죄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물론 나폴리는 완벽하지 않았다. 어딜 가도 길에는 쓰레기가 있었고, 비에 젖은 발로 여기저기 걸어다니느라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괜찮았다. 막연히 행복해지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북이탈리아를 여행하러 온 시절 막연히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그 도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그 때의 내가 틀렸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그렇다면 된 일이었다.




(나폴리 여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행기가 아닌 형태의 글로 올 하반기에 쓸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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