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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다 Jun 23. 2020

원장님 그런데 혹시 영단어는 외우세요?

산발의 번역사가, 미용실에서





10개월 만에 미용실을 갔다. 원래 일 년에 두 번쯤 가는데 코로나19를 핑계로 석 달쯤 미뤘고, 재난지원금 덕분에 1년을 채우지 않는 선에서 미루기가 끝났다. 2년째 다니는 집 근처 1인 미용실의 원장님은 참고사진 한 장 제대로 찾는 법이 없는 내 머리에서 '알아서' 결과물을 생성해 나의 신뢰를 얻었다. 한편 성격적으로는, 미용계 종사자 분들이 흔히 그렇듯 손님과의 대화를 즐기는 성향이 매우 뚜렷하다. 지난 2년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분과 단 둘이서(예약제 1인 미용실이니까) 몇 시간을 보내 본 결과, 원장님은 나처럼 말수 적은 손님이 열펌을 하러 오면 처음에는 조용하게 업무에 몰두하지만, 파마약 도포와 열처리 사이의 어드메쯤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말문이 트인 유아가 언어 습득을 멈추지 않듯, 일단 시작된 대화는 길고 긴 드라이가 끝날 때까지 꾸준하게 이어진다.


문제는 물론 손님이 나라는 데 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말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동물 채널 약간과 음악 영상을 제외하면 유튜브는 사실상 안 보고, 한국 대중문화에도 무지하며, 연애/결혼/출산 등 한국인의 표준적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치킨을 안 좋아하며 탕수육 소스는 붓든 찍든 상관없다(참으로 다행히도 김치는 좋아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방문한 거의 모든 미용실에서 대화하기 가장 어려운 손님 명예의 전당에 가뿐히 올랐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런 인간과 공통의 화제를 찾는 게 쉬울 리 없으니까. 사실은 나도 나와 대화하려다 실패한 미용사들의 침묵에서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몇 달 전, 친구 A에게 미용실 대화가 곤욕스럽다고 말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나는 미용실에서 늘 자는데."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왜 그 긴 세월 동안 잘 생각을 안 하고 사람을 유달리 못생겨 보이게 하는 미용실 거울 속 내 모습을 뜬눈으로 보기만 했을까. 그리하여 이번에는 A를 따라 나도 자 보기로 했다. 다행히 나는 늘 좀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라 눈만 좀 감으면 삼일 연속 야근한  분위기는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일단 원장님과 꼭 필요한 대화(쇄골 기장, S컬, 디지털펌)를 나눠야 했다.


그런데 머리를 얼마나 잘라야 할지 기장을 체크하던 원장님이 심상한 말투로 묻는다. "평소에 머리 묶고 다니시죠?" 어쩐지 올 때마다 이 질문을 받는 것 같은데, 내가 아까 올 때 머리를 묶고 와서 그런지 혹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이 망나니 산발을 설마 그대로 내놓고 다니십니까?'라는 뜻인지 조금 신경 쓰인다. 한국어 사용자들이 좀 완곡해야지. 뭐, 전자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보통 풀고 다니는데요, 요즘은 더워서 묶기도 해요."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마침 전날 밤에 왓챠 구독 마지막 날이라고 <와이 우먼 킬>을 몰아서 본 터라, 눈을 감자마자 졸림을 닮은 어떤 피로가 몰려들었다. 하긴 내가 전날에 꼴랑 네 시간 자고 멀쩡할 체력은 아니지. 고요 속에서 첫 샴푸가 끝나고 커트의 시간이 왔다. "그런데 손님 트리트먼트나 린스는 하시나요?"


음?


나는 짧고 간결하게 사실만을 전달했다. "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자야 하니까. 그러나 닫힌 눈꺼풀 아래에서는 약간의 불안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럼 역시 아까 그 질문도...? 제 아무리 자는 척해도 머릿결 얘기만큼은 피할 수 없구나.' 트리트먼트나 린스는 하시냐니. 어쩜 그런 말씀을. 저는 샴푸를 하고 나서 트리트먼트와 헤어 오일과 컬링 에센스를 사용합니다, 선생님...


어느 미용실에 가도 한 번쯤은 듣는 이 말을 나는 오랫동안 내 머릿결에 대한 진심 어린 질책으로 받아들였다. 헤어에 무관심한 나머지 17세부터 28세까지 반묶음 아니면 묶음만을 고수했던 내 머리카락이 완벽할 리 없으니까. 그러나 엄마가 사놓은 린스를 쓰던 고등학생 시절에 비해 지금은 해외여행 갈 때도 트리트먼트와 헤어 오일과 컬링 에센스를 꼬박꼬박 챙길 정도다. 비록 손이 맵지 못해 대충대충 바른다곤 하나, 그간 해온 게 있건만 어찌하여 아직도 머릿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말인가.


여기서 잠시 미래로 가 보자. 훗날, 원장님의 노고 덕에 잠시 보들보들하고 사르륵하며 컬이 탱글한 헤어의 소유자로 변신한 나는 주변 사람 몇 명에게 이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이번에도 미용실에서 혼났다고. 십 년 넘게 혼나고 있다고. 이 말에 여러 가지 반응이 돌아오리라. 머리 감은 후 드라이에 늘 30분씩 투자한다는 어느 지인은 의미심장하게도 "그래?"라 말할 뿐이다. 반면 두어 명은 자기도 늘 듣는 말이라며 공감을 표시한다. 그중 한 명은 자기 머리를 직경 몇 mm의 롤로 어느 위치에 말아야 원하는 컬이 나오는지 아는 사람이므로, 머릿결이 그렇게 나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친구 B는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어쩔 수 없어, 그분들도 트리트먼트랑 에센스 팔아야지." 그리고 그녀는 뜻밖의 말을 한다. "너도 회사에서 번역하면서(내 밥벌이다) 부업으로 영단어 책도 팔아야 하면 그런 말 해도 될걸."


음?


B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허튼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져 온 사이인만큼, 이 신박한 드립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나) 야,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 번역 검수한 다음에 결과물 돌려주면서 "대리님 근데 혹시 단어는 외우세요?" 하는 거임? (B) 그렇지. 그렇게 운을 띄우고 나서 "요즘은 이 단어장이 트렌디해요 30일 완성으로 미국식 비즈니스 보카 마스터하기 딱이에요" 하고 주섬주섬 책을 꺼내는 거야. (나) 그리고 내 책상 서랍을 열면 단어장, 휴대용 통역기, 회화집 등등이 쌓여있는 거군...!


이 이미지의 터무니없음이 마음에 들어서, 나는 한참을 웃었다. 나나 주변의 업계인들 중 그런 걸 잘 팔 것 같은 사람은 극히 드물다. 통역도 그렇지만, 번역은 대개 원저자의 의도를 철저히 반영해 주어진 텍스트를 꼼꼼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자기 목소리가 새어나가는 걸 억누르지 못하면 정통적 의미로 좋은 번역가라 하기 어렵다. 이런 일을 하면서 동시에 "대리님 영단어는 좀 외우세요?"라고 말한다니. (나) 통번역이 그런 거였으면 난 절대 이 길 안 했을 듯. (B) 당연하지.


그다음 날, 샴푸칠 한 번에 빛과 영광을 잃은 머리카락을 묶고 땡볕 아래를 걷던 나에게 불현듯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어쩌면 '트리트먼트 하세요'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도 있듯, 헤어 스타일링은 분명 전문성과 난이도가 있는 기술의 일종이다. 그러나 영어와 헤어 스타일링 간에는 한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는데, 둘 중 영어 실력만이 사용자의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보통 소수의 식자층과 상류계층뿐이다. 반면 헤어는 모든 상황에 놓인 모든 계층의 여성들에게 '잘' 할 것이 은근히 기대된다. 마치 가난한 설정이어도 늘 다른 의상을 예쁘게 코디해 입는 드라마 여주인공들처럼. 그 기대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혹은 당사자가 기대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협찬은 드라마에나 있는 것인데도.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그 기대를 수행하지 못하는(않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20대의 태반을 묶은 머리로 보낸 나처럼. 그러나 나 또한 어쩌다 잡힌 소개팅을 앞두고 화장대 앞에 앉으면 나 자신의 모습이 좀 편치 않았다. 여자라면 마땅히 그런 자리를 앞두고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능력함'이 내심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번역사들은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에게 영어 공부 좀 하라는 뜻으로 들릴 만한 발언을 절대 하지 않는다. 영어 공부법을 가르쳐 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조차도 그렇다. 반면 미용실에서는 고객이 전혀 요구하지 않아도 머리 말리는 법, 에센스 바르는 법 등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미용사의 고객 관리 능력이 된다. 영어를 못 한다는 지적은 상대의 지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완벽한 머리는 모든 여자가 찾아 헤매는 성배 같은 것이니까. 그런데 성배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피가 담겼었기 때문에 중요한 물건이고, 컵의 본질에 맞게 커피를 담아 테이크아웃 300원 할인을 받는 용도로는 쓸모가 없다. 게다가 성배를 갖고 있으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소중한 성배를 도둑맞진 않을까 늘 신경이 쓰일 것 같다.


(혹시 성배에 담은 커피가 와인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안타깝게도 나는 술을 안 마신다.)


물론 나 또한 미적 감각과 허영심을 지닌 한 명의 인간이므로, 어쩌다 머리가 예쁘게 말려진 날은 조금 더 기분이 좋다. 다만, 어떤 사람들에게 전문가급으로 완벽한 헤어는 마치 오래간만에 호캉스하러 간 특급호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호텔에서의 며칠이 아무리 좋았어도 자기 집을 호텔처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노동시킬 순 없다. 번역일을 할 때 예쁜 머리가 흐트러질까 신경 쓰인 적은 있어도 잘 묶인 봉두난발이 문제 된 적은 없기도 하고. 나보다 훨씬 머리를 잘 관리하는 사람들도 아마 조금은 이 말에 공감하리라 예상해 본다. 30분씩 머리를 드라이하는 건 객관적으로 번거로운 일이기에.



그렇다고는 해도 단골 미용실의 원장님에게 딱히 나쁜 감정은 없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10개월 만의 파마를 하던 그 날로 돌아가자. 기나긴 파마 과정이 끝나 가는데도 원장님이 평소와 달리 조용했다. 내가 파마약 후반부쯤에서 다시 눈을 떴는데도 말이다. 잠들기 작전이 성공했나 보다고 나는 내심 기뻐했다. 반면 원장님으로서는 장장 두 시간 넘게 묵언수행을 하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드라이를 앞두고 마지막 샴푸를 할 때, 원장님의 입이 갑자기 열렸던 것이다. 오늘의 화제는 아무래도 유튜브가 되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드라이만 남았으니, 해볼 만하다. 원장님이 유튜브에서 뭘 주로 보시냐고 묻자, 나는 동물 영상 위주로 본다고 답했다. "집에서 강아지를 기르거든요." "그래요? 어떤 종 기르세요?" "말티즈요." "아 그거 털 긴 강아지 아니에요?" "맞아요. 근데 저희 강아지는 털 짧아요." 그리고 나는 건조하게 사실만을 전하는 말투로 한 마디 덧붙였다. "털 길면 빗질을 잘해줘야 하거든요. 제가 제 머리도 이 꼴로 하고 다니는데 강아지 빗질은 잘하겠어요?"


그 말을 듣자, 원장님은 절대 예의일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객에 대한 예의였으면 상체가 살짝 접히면서 3초씩 웃을 리 없다. 역시,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내 머리의 상태가 안타까웠던 거야. 어쩌랴, 내가 번역서의 질에 본능적으로 까다롭듯 헤어 전문가 또한 헤어의 질에 민감할 수밖에 없겠지. 원장님이 작년에 추천하신 지름이 큰 구루프 덕분에 옆머리 꼴이 나아진 거라는 말을 했다면 혹 조금은 위안이 됐을까. 그건 그렇고 약간 노린 멘트가 빵 터지니 솔직히 뿌듯하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는 원장님은 재빠르게 다른 질문을 던져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남은 드라이 시간은 우리 집 반려견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비글 같은' 성격의 어느 유튜버 근황 공유를 거쳐 (그 유튜버가 마침 기독교인이었던 탓에) 개신교와 천주교 간 차이에 대한 원장님의 고찰을 듣는 것으로 끝났다.


"1x만원입니다."
"일시불로 해 주세요."


이것으로 내 재난지원금과 우리의 업무적 관계가 끝났다. 여길 다시 오게 된다면 아마 내년이겠지. 나는 원장님과 각자의 사회성을 총동원한 인사를 나눈 후, 보들보들하고 사르륵하며 컬이 탱글한 머리로 미용실을 나섰다. 목적지는 그냥 집이었다. 배가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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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후 이사하면서 미용실을 바꿨다. 놀랍게도 더 빠르고 더 싸며 3시간 동안 거의 말을 걸지 않는 분이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발행취소한 후 잊고 있었던 이 글을 추억 차원에서 다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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