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어땠어?"
"재밌었어."
"뭐가 재밌었어?"
"축구."
"축구했어?"
"아니. 친구들 축구하는 거 구경했어."
"그랬구나. 축구 보는 게 재밌었구나. 같이 하고 싶지는 않았어?"
"하고 싶었지. 나도 하고 싶었는데, 하늘이 구름이, 다들 잘해.
나는 아빠한테 축구하자고 할 거야. 아빠랑 축구할 거야."
"그래, 그럼 되겠다!"
2년 전 아들 녀석이 친구들 축구하는 걸 구경만 하는 걸 보고, 나는 곧장 FC에 등록시켰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고 체력적으로 밀리는지라 FC에서도 골키퍼를 맡거나 뒤에서 가만히 서있는 일이 잦았다.
가기 싫다고도 여러 번 했는데, 조금만 더 해보자며 설득했고 6개월 즈음 해보다 그만뒀다.
내가 떠올린 해법은 FC였는데 아이가 떠올린 해법은 아빠다.
아빠와 신나게 뛰고 밝은 얼굴로 집에 들어와 이렇게 말한다.
"엄마, 아빠 되게 못해. 12대 10으로 내가 이겼어!"
아이는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지금 생각해 보니 FC에 등록하면서 아이에게 제대로 묻지 않았다.
축구 좋아하냐고, 축구하고 싶냐고, 축구 배우고 싶냐고.
그저 친구들 다 하는 거니까 같이 해보라고, 재미있을 거라고 꼬시기 바빴다.
아이의 목소리를 궁금해하지 못했다.
축구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아들이 하는 건데도 말이다.
또래 사이에 끼지 못하는 걸 보고 있으니 속이 상했다.
그대로 두면 더 밀릴까 봐 걱정도 됐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 여겼지만 결국 내가 속상하고 불안해서였다.
부모의 욕심과 불안, 걱정을 아이를 통해 해결하려고 할 때가 있다.
'너 잘되라고, 너를 위해서'라고 여기지만
'나를 위해서, 내 마음 달래려고'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앞으로도 축구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는 소외감을 느끼는 날이 또 올 것이다.
그걸 견디는 건 아들의 몫이다.
힘들면 나에게 말할 것이고 속상하면 아빠한테 축구하자고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안심이다.
키도 체구도 작은 아들이 또래에게 밀리는 게 속상하고 걱정스러울 날은 또 올 것이다.
그걸 견디는 건 엄마인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