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눈에 보일 듯 달려와 피부를 감싸안던 그날 밤, 우리는 나란히 한강을 걸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너를 데려갈 것만 같아 덜컥 겁이 난 나는 펄럭이던 너의 옷자락을 잡아끌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좋아하는 네 냄새. 네 숨소리. 작은 진동. 숨을 내쉬어줘. 네가 뿜어내는 건 뭐든 다 가질 거야. 입술에 너의 살결이 닿았다. 깊은숨을 쉬었다. 살 것만 같았다. 멈춰있던 온몸의 장기가 이제야 제작동을 하는 것 같았다. 제발 날 사랑해줘.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처럼 날 사랑해줘.
너와의 이별은 오랫동안 깊은 상실감을 가져왔다. 나는 하늘도 땅도 아닌 어느 고도에 붕 뜬 채 주인 없는 연처럼 떠돌아다녔다. 세상 누구와도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외로움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파도가 모래를 쓸어가듯 네 존재가 나에게서 희미해지길 바랐다. 내 몸속에 남은 너의 모든 숨결이 다 날아가고 없어질 때쯤 나는 두 발을 땅에 내딛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서게 된 나는 날카로운 조각에 떨어져 나간 한쪽 팔 때문에 균형이 맞지 않은 걸음을 걸었다. 자꾸만 기울어져 걷는 탓에 과연 내가 예전에는 잘 걷던 사람이었나 의심이 들었다. 모든 게 서툴렀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부터 밥을 지어 입에 넣는 것도, 사람을 만나고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전부 배넷 저고리를 처음 입은 갓난아기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그 사이 계절은 여러 번 바뀌고 바깥 풍경도 사뭇 달라졌지만 내 안엔 여전히 너를 떠오르게 하는 단어들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것들은 내 육체의 내벽을 핑퐁 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그중 하나가 심장을 툭 쳐 반짝 불을 밝히기라도 하면, 나는 그 열기를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워 젖은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야만 했다.
우리의 처음을 떠올렸다. 그날도 개나리가 만개한 봄이었다. 저 멀리서 네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잠시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눴다. 우린 스치듯 순간을 마주한 후 자연스럽게 서로를 등진 채 걷던 걸음을 걸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헤어짐은 그저 우리가 처음 만난 그날 같은 것뿐이라고. 다른 게 있다면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 뿐이라고. 그러나 그것마저 저 먼 우주에서 보면 어쩌면 우리의 오랜 시간도 그저 찰나일 거라고. 너와 나는 그냥 처음 만난 그날처럼 스치듯 그렇게 걸어가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 지우려 애쓰지 말고 개나리가 예뻤던 그날을 기억하듯 서로를 추억하자고. 그만 마음 아파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