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가 없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소리 내 울던 날, 아빠는 우릴 버리고 떠났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우는 엄마의 곁에 멀찌거니 서서 눈만 껌뻑 껌뻑 거렸다. 가슴 부근이 이상하게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서야 나는 이게 마음이 아픈 증상이라는 걸 알았다. 믿기 싫지만 그날이 내 기억 속 마지막 아빠의 모습이다. 뒤통수에 얼굴을 그려 넣어보려 해도 꿈속에서조차 얼굴 없는 그 사람. 엄마는 내가 아빠와 닮았다고 했다. 그런가? 그래도 엄마는 날 사랑한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도 말했다.
내가 다른 애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내 고추가 엄마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이었다. 엄마와 함께 이모들 많은 목욕탕에 가는 게 이상하게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때인 것 같기도 하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한 남자애를 좋아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그 아이를 본 순간 반짝이는 모래 빛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가슴이 이상하게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아빠가 떠났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내 사랑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교실 복도에서 마주친 그 아이에게 "널 좋아해."라고 고백했을 때, 그 아이의 두 눈동자에는 두려움인지 놀라움인지 뭔지 모를 표정이 스산하게 지나갔다. 그 아이는 큰소리로 내게 말했다.
"너 남자잖아. 날 왜 좋아해?"
"남자면 너 좋아하면 안 돼? 여자만 널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안되지, 당연히. 이상한 애다. 애들아!!!! 얘 이상해!!! 얘가 나 좋아한대!!!!!!"
모래 빛보다 빛나던 그 아이는 나를 피해 단숨에 저 멀리 아이들의 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아이가 사라진 내 세상은 한순간에 조명이 꺼진 채 무채색이 되었다. 힘차게 뛰던 내 심장은 바스러져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교실 모퉁이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날 나는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 후로 내 등 뒤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말은 '남자 좋아하는 새끼'였다. 남의 집 빤스 쪼가리 하나까지 다 아는 이 좁은 촌구석 작은 학교에서 내 이야기는 유별나게 재밌고 자꾸 씹어도 단물이 쪽쪽 나와 맛있는 안주거리였다.
'저 새끼 남자 좋아하잖아. 아 역겨워.'
'야 웃어주지 마. 쟤 너한테 반할라.'
차라리 뒤에서 수군대는 아이들이 나을 법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나를 불러 세워 마치 나에게 자신들의 궁금증을 반드시 풀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물었다.
"너네 아빠도 너처럼 남자가 좋아서 나간 거 아니야? 어?"
"아님 너 남자 좋아하는 거 알고 더러워서 나간 거야? 야 말 좀 해봐. 야! 야!"
…
남들과 다르다는 건 세상이 내게 준 형벌이다. 하루하루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일.
사람들은 나의 다름으로 본인들의 안도감과 우월감을 찾는 듯하다. 다수와 같은 곳에 서있는 본인들이 정상이고 나는 비정상이라는 생각. 테두리 밖에 있는 나는 그들의 존재 가치를 올려주는 그저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고장 난 계단일 뿐. 서로 같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외계인인 걸까.
어쩌다 나는 내 별이 아닌 이곳에 떨어졌을까. 나도 내 별에선 평범할 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