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병실, 방금 발목 수술을 받은 동생이 침대에 실린 채 들어왔다. 마취가 덜 깼는지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물을 달라고 손짓을 하니, 링거를 만지던 간호사가 말했다.
“아직은 안돼요.”
건너편 침대에 70대로 보이는 흰머리가 희끗하신 할아버지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이는 뭐라도 말을 걸고 싶은데 목구멍에 걸려 제대로 쏟아내지 못하는 양 입술을 우물쭈물거렸다.
2시간 뒤, 화장실에 가겠다는 동생의 말에 휠체어를 챙기러 가는 나의 등 뒤로 그이의 말문이 터졌다.
“이거 써요!! 이거 좋아!!!! 이거 쓰며 돼!!!!!”
그는 본인 곁에 개인용처럼 두고 쓰는 휠체어를 나에게 양보했다.
"아 네네 감사합니다."
잠시 휠체어를 만지작 거리며 서있는 나를 보고, 그이는 과하게 큰 목소리로 병실이 떠나가라 설명을 했다.
“거기를 풀고 쓰면 되고!!!!!!!! 링거를 거는 막대기는 저쪽 꺼 꺼내서 써야 해요!!!!!!!!!!!!”
“아 네 네... 감사합니다..!”
너무나 큰 목소리에 병실 사람들의 이목이 한순간 나에게 집중되었다. 내 얼굴은 단숨에 새빨개졌다. 결국 한 환자가 나가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라고 말해 나는 홍당무가 된 얼굴을 들고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알고 보니 그이는
이 병실의 눈엣가시였다.
6인이 사용하는 이 병실에는 그를 제외하고 모두 상주하는 간병인이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지만 모두 그를 못 본 척, 모른 척한다는 것을 몇 시간이 흐르고서야 깨달았다.
처음에는 병문안 오는 가족이 한 명도 없어 외로운 탓에 주변 사람에게 저렇게 말을 거는 걸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매번 그가 빈 배식판을 치워달라고 말을 걸었을 때에도, 침대 높낮이를 조절해달라고 뜬금없이 나를 불러 세웠을 때에도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병실에 묵는 환자 가족 모두를 본인의 간병인처럼 부린다는 것이었다. 침대 밑으로 떨어진 물건 좀 주워달라,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 좀 가져다 달라, 컵에 물 좀 떠다 달라 등등. 호의로 그를 대하던 사람들이 점점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나는 시간차로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동생은 불편한 그를 피해 커튼을 벽 삼아 거리를 두었다.
거기다 그는 모두 식사가 한창일 때에도 제 집 부엌에서 혼자 밥을 먹는 양 트림을 크게 하고 방귀를 뀌기도 했다. 심지어 “카아 아악 퉤!” 소리 내 가래를 뱉기도 해 어떤 환자는 식사를 하다 말고 숟가락을 던지듯 내려놓는 일도 있었다.
낯선 그의 행동은 밝은 낮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도 그는 쉬지 않고 소음을 만들어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소리는 더욱 유난스럽게 크게 들렸고, 종종 탄식 섞인 한숨들이 침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나와 동생은 그에게 들릴 세라 커튼 안에서 속삭이며 말했다.
"야, 저런 사람 본 적 있어?"
"아니, 나 처음 봐."
"와... 신인류다. 신인류. 신인류가 나타났어."
"ㅋㅋㅋㅋ 방 바꿔달라고 할까?"
결국 한 환자의 보호자가 간호사에게 말을 했나 보다. 간호사는 그의 링거를 봐주러 들어와, 무심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부탁하지 말고 저한테 하세요. 여기 벨 보이시죠. 이거 눌러서 간호사 부르세요. 아버님이 자꾸 이분들 불러서 뭐 시키면 싫어하세요.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춰서 말씀하세요. 여기 있는 분들도 쉬러 오신 거예요. 아시겠죠?"
그는 간호사의 말에 약간 토라진 듯했으나 타격감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그의 보호자로 보이는 키가 작고 땅땅한 할머니의 등장과 함께 병실의 분위기가 단숨에 달라졌다. 그녀는 들고 온 비닐봉지를 서랍장에 내려놓더니 다짜고짜 병실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혼냈다.
"아니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잠이나 잘 것이지, 집에서 하던 짓을 여기까지 와서 해? 사람들 귀찮게 뭐한 거야 대체. 내가 창피해서 못살겠어 진짜. 가만히 있어,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얼마나 뭐라고 하시던 지 침대마다 쳐져 있는 커튼이 없었다면 나와 동생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퍽 난감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짧은 시간동안 병실에 머무르면서 해야만 하는 할 일을 처리하는 듯했다. 닦을 걸 닦고 가져다 줄 걸 가져다주고 해야 할 말을 건조하게 내뱉었다. 병실의 질서가 잡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한차례 더 할아버지에게 주의를 주고는 유유히 병실을 떠났다.
"조용히 있어, 조용히. 나 간다."
그 시간 이후로 이틀 동안 그는 침대의 커튼을 거두지 않았다. 간간히 불만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만 뚫고 나올 뿐이었다.
“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다들 그러는 거야.”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그렇게 시끄러워?”
“내가 시키면 얼마나 시켰다고 그러는 거야. 참 나”
그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현격히 줄어들자 나의 기분이 서서히 좋아졌지만, 굳게 닫힌 커튼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며칠 뒤 아침, 그의 옆 침대에 있던 아저씨가 퇴원을 했다. 병실 사람들에게 모두들 쾌차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목례를 하며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의 커튼만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오후가 지나자 한 노인이 침대의 새로운 주인으로 들어왔다. 목소리에서 같은 연배라는 걸 느낀 걸까, 그는 새로운 사람이 짐을 푸는 소리에 반가워하며 마치 아침 새소리에 창문을 열듯 커튼을 젖히고 큰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나랑 나이가 비슷하신 거 같네!!!!!! 어디가 다쳐서 오셨어요?"
"아 안녕하세요. 저 무릎 수술하러 들어왔습니다."
첫인사는 짧고 굵게 끝났지만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옆에 앉아있는 노인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말을 걸고 싶은 것 같았다. 싫지 않은 듯 노인이 말을 받아주자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가득 신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의 회환이었다.
그는 평생을 공사판에서 일했다고 했다. 가난한 집안에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배운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안 해본 일 없이 다 하며 악착같이 살아왔다고 했다. 거칠고 큰 소리가 가득한 건설 현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귀가 웡웡한다고 했다. 큰 소리에 둔감해졌는지 목소리가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나이가 들어있습디다. 자식들은 지 살 길 사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고 같이 놀러 갈 친구도 없네요. 마누라한테 짐만 되는 거 같고 괜히... 몸은 또 아파서 병원에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만 있고... 작년에 이 병원에 8개월을 누워있었습니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몇 개월 만에 다시 병원에 들어와서 또 이렇게 몇 달 누워만 있어요. 허참... 이제 진짜 늙었나 싶습니다."
"그러게요. 저도 이제 좀 살만 하니까 무릎이 고장 나서 30분도 못 걸어 다닙니다."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산 송장 같습니다. 허허 빨리 나아서 나가세요. 오래 있지 말고. 허허"
"예예 그래야죠."
그는 담담하게 1시간이 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동안 병실의 사람들은 왔다 갔다 제 할 일을 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부산스러움 사이로 그들의 목소리가 바닥에 흐르는 물이 되어 우리의 가려진 커튼 아래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커튼을 열고 휴지를 꺼내 물기를 닦았다. 물기가 어찌나 많은 지 내가 가진 휴지 뭉치로는 모두 닦아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남은 물기는 그냥 두기로 했다. 시간에 바람에 천천히 마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