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한반도 남쪽 끄트머리에는 대마왕 부부로 이름난 용기와 순덕이 산다. 그들로 말할 것 같으면,
용기란 사람은 청개구리를 한 100마리 정도는 삶아먹은 것 같은 고집불통 대마왕이다. 저녁 8시쯤 순덕에게 전화를 걸면 어디선가 시끄러운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용기가 내는 소리이다. 취미 부자인 용기는 순덕이 해준 저녁밥을 먹고 늘 본인의 취미를 즐긴다. 키보드, 드럼에 이어 최근에는 몇 년 간 색소폰을 불고 있다. 용기네는 2층 집이다. 위층에 올라가서 연습을 한다면 순덕이 거실에서 조용히 드라마를 볼 수 있을 텐데 퇴근 후의 용기는 순덕의 옆을 떠날 줄 모른다. 용기에게는 순덕의 짜증을 관심과 애정으로 받아들이는 괴상한 특성이 있다. 그녀 앞에만 가면 ‘좋아하는 아이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남자애’가 되어 어떤 식으로든 순덕의 얼굴에서 구김을 이끌어낸다. 그의 삐뚤어진 사랑,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건 용기네 식구들만 아는 사실인데 용기는 상당히 여리다. 겉으로는 행동도 거칠고 목소리도 커서 많은 사람들이 센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용기는 정말 유리같다. 살면서 용기의 눈물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 생에는 내가 저 이의 부모로 태어나서 충분히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저 가여운 아이를 사랑해줘야지.’ 하지만 나는 현생도 몹시 버거워 다음 생에는 태어나지 않을 예정인지라 이번 생에 용기에게 줄 수 있는 애정을 모두 줘야만 한다.
용기는 가여운 어린 시절을 살았다.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았던 그 아이는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그래서 용기는 평생을 쉬지 않고 일했다. 투잡의 생활화. 자수성가의 아이콘. 이것이 바로 용기의 삶이다. 그런데도 용기는 여전히 자기 인생이 부족하다 말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에게 칭찬이 필요하구나 싶어 있는 힘껏 두 엄지를 추켜올린다. “용기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은 드물지! 집도 이렇게 크고 땅도 있고 지금까지도 돈도 잘 벌고! 용기가 최고지! 우린 용기 덕분에 호강하고 살았지!” 라고 말하면 용기는 눈시울을 붉히며 겸연쩍게 웃는다. 나이가 들어도 칭찬과 인정은 늘 필요하다. 용기의 자존감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찍을 수만 있다면 나는 목청이 터져라 그를 응원할 것이다.
이 고집불통 대마왕과 살아주는 여인은 퍼주기 대마왕 순덕이다. 순덕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을 담아 딸의 이름에 ‘덕’을 넣었을까. 그녀는 이름에 박힌 그 글자에 맞게 인생을 살아왔다. 순덕의 동생은 어린 시절 시장에서 나물을 팔아 본인의 운동화를 사 온 언니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순덕은 본인이 가진 사랑을 겉으로 표현을 하는 것엔 서툴다. 난 평생 그녀에게 따뜻한 포옹을 받거나 낯간지러운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을 깨닫는데 오래 걸렸다. 순덕은 그저 아끼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방식으로 늘 사랑을 건네고 있었다. 타지에 사는 자식에게도 비슷했다. 택배에 가득 애정을 담아 주기적으로 보내는 것. 아쉽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정 표현이다.
내가 큰 이별을 겪어 순덕의 마음에까지 상처를 줬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속상한 얼굴을 내비쳤다. 그러나 순덕은 그녀답게 이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 하지 말고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라고, 세상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도 있다고. 난 순덕의 말대로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아마 내 마음에 미움보다 사랑이 많은 건 순덕의 덕인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욕심 많고 제멋대로인 용기를 끌어안을 수 있는 것 또한 순덕 뿐일지 모른다.
35년 전, 둘은 순천의 어느 철학관에서 궁합을 봤다고 한다. 사주쟁이는 둘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천생연분이라고 했다 한다. 순덕은 평생 사주쟁이가 틀려먹었다고 말했다.
“난 용기가 좋아서 같이 사는 게 아니야. 너희들 때문에 사는 거야.”
라고 말하며 늘 천덕꾸러기 같은 용기에 이를 갈았다. 하지만 우리가 용기를 미워할 때면
“용기 같은 사람 없어. 너네는 용기를 미워하면 안 돼.”
라며 한껏 용기를 옹호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마치 용기를 미워할 수 있는 건 순덕 자신 뿐이라고 말하는 건가. 부정하겠지만 순덕은 용기를 사랑하는가. 순덕이 들으면 질색할 단어이다. 사랑.
고집불통 대마왕과 퍼주기 대마왕으로 본색을 숨기고 있는 그들의 진짜 정체는 사실 수다 대마왕이다. 그리고 이건 지금까지도 그들을 질기게 이어주는 탄탄한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둘은 함께일 때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딱히 따뜻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로 감정적으로 보듬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툭툭 뱉듯이 하루에 있었던 작고 사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어떨 땐 누군가를 흉보기도 하고 어떨 땐 서로의 잘못을 질책하기도 한다. 드라마를 함께 보며 깔깔 웃기도 하고, 흥미가 떨어진 한쪽은 유튜브를 보기도 하는데 볼륨을 지나치게 높여 또 잔소리를 듣는다. 당연히 용기 이야기이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한 명씩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든다.
언젠가 한 번은 늦은 밤 용기와 순덕이 잠을 자야겠다며 안방에 들어가길래 나도 그들을 따라 옆방에 들어가 누웠다. 잔다던 그들의 방에선 10분이 넘도록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하는 걸까 궁금했던 나는 그들의 방을 급습하기로 했다. 살금살금 내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그들의 방문을 거칠게 열고 불을 확 켰다. 나는 누워있는 둘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아 진짜 웃겨 ㅋㅋㅋ 둘이 뭐 하는 거야 ㅋㅋㅋ “
그때 사진을 찍어놓지 않은 걸 지금도 아쉽게 생각한다. 둘은 어둠 속에서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각자의 두 손을 베개 삼아 쪼그려 누워 마주 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찌나 신나게 떠들고 있었던 지 내가 쳐들어온 걸 인지하는 데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쟤가 왜 저래!!! 불 끄고 문 닫아!!!!”
신기한 건 둘은 서로가 꽤 좋은 관계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이다. 우리 삼 남매는 늘 그것이 의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 감정을 드러내는 건 무너지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그들이기에 이런 것 마저도 굳이 말로 꺼내고 싶지 않은 걸까. 나는 그들이 상대의 가치를 알았으면 한다. 그러면 조금 더 서로가 있어 행복하다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두툼한 갈치 몸통은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용기에게는 갈치 꼬리만 주는 불상사가 더 이상 없지 않을까.
소중한 나의 사람들, 지금처럼만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