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 Sep 16. 2019

군자동 점쟁이


신내림을 받은 지 20년이 흘렀다. 신빨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졌다. 나의 그분은 요즘 내 간절한 부름에 통 응답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딸랑이를 흔들어도, 아무리 쌀알을 끌어올려도, 아무리 인왕산의 무슨 신, 남산의 무슨 신, 5분이 넘게 다른 신들을 찾아도 질투조차 하지 않는다. 아마 그이는 한을 풀고 삼도천을 건너버린 지 오래인지도 모른다.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나는 오늘도 가게 문을 연다. 요새 남편의 몸이 안 좋다. 몇 개월 전 치매 진단을 받았다. 한밤중에 몰래 집 밖에 나가 동네를 헤매는 일을 여러 번 겪고 자식들이 몇 달 병원에 입원시켰다. 누가 남편을 간병하랴. 내가 하지. 이번 달에는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 손님을 절반이나 받았나 모르겠다.



 운이 좋게 어제, 내일 방문해도 되겠냐는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벌써 오늘 오겠다는 고객만 두 명이다. 오랜만의 손님이라 기분이 좋았다, 10만 원은 벌어 가겠다 싶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살짝 걱정이 스친다.

‘그분이 안 오시면 어떡하지.’

요즘 떨어진 신빨 때문에 걱정이다. 그래도 나에겐 20년의 경력이 있으니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손님들 눈동자 굴리는 것만 봐도 긴지 아닌지 눈치껏 알 수 있다.  



1시에 첫 손님이 찾아왔다. 말수도 숫기도 없는 20대 후반 청년이다. 이런 애들이 요즘 신빨 떨어진 내 상태에 손님으로 좋다. 기가 약한 애들. 기 센 애들은 어후. 말도 말자. 뭐라도 조금 물어보면 ‘당신이 맞춰야지 왜 나한테 물어보냐’며 쏘아댄다. 힘들다. 아무튼 얘는 참 힘들게도 살았더라. 너 부모 복이 없다고 했더니 어릴 적에 엄마는 도망가고 아버지란 작자는 술만 마시다 얘 고등학교 때 죽었단다. 그래도 삼 형제가 참 잘 컸다. 큰형이 유독 고생을 좀 했겠다. 밑에 동생들 데리고 사느라. 내 말을 들은 아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다 큰 청년이 왜 우냐고 울 일 없다고 했더니 쑥스러워하며 눈물을 닦는다. 이렇게 힘들게 자란 애들을 보면 미래에 뭐가 보이든 좋은 이야기만 해주고 싶다. 사실 미래가 그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이진 않는다. 과거는 사진처럼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이 있는데 미래를 물어보면 흐릿흐릿한 게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얘 조만간 시험 보고 있는 거 잘 될 것 같다. 아무 생각 말고 지금 하는 공부에 죽자 살자 매달려라 했더니 얼굴에 무지개가 핀다.



청년을 보내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옆 인쇄소 딸내미가 엄마가 가져다 드리라 했다며 콩국수를 들고 왔다. 배고픈데 참 잘 됐다. 허겁지겁 먹고 낮잠을 한숨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2시간이나 지났다. 왠지 모르게 머리가 아프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나도 이제 정말 나이가 들었나 보다.



4시에 오기로 한 손님이 10분 일찍 왔다. 노란 원피스에 예쁘장한 여자 손님이다. 점집에 양말을 신고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샌들에 웬 검정 양말을 어울리지 않게 신고 들어왔다. 아가씨가 앉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다.

“갈피를 못 잡고 고민이 많고만.”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한다. 점집에 인생이 잘 풀려서 오랴. 일을 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왔단다. 쌀알들을 끌어모으며 딸랑이를 흔들었다. 그분들을 불렀다. 한참을 불렀다. 어떡하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공에 한참 부르짖었다. 제발... 제발.... 등에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당황하면 안 된다. 나는 20년 경력의 점쟁이니까.



눈을 뜨고 물었다.

“결혼은 했어?”

작년에 했단다. 결혼했으면 애나 낳지, 무슨 일을 하려 하냐고 말했다. 일이 하고 싶다 한다. 아니 근데 진짜 결혼했으면 애 낳을 생각을 해야지, 요즘 것들은 아무튼 정신이 없다. 남편이 따박 따박 가져다주는 월급 가지고 살면 되지, 뭐 하러 나가서 일하려고 하냐고, 애기 낳을 생각이나 하라 했더니 얼굴에 실망이 가득하다.

“남편은 잘 얻었네. 남편이 헛짓은 안하겠어. 고집은 좀 세도 성격이 좋아.”

라고 점쟁이들 사이에서 남편을 두고 하는 멘트 1번을 던졌더니 실망 가득했던 얼굴이 금세 핀다. 더 물어볼 게 있는 지 물었다. 물어 볼 건 없는데 자기한테 보이는 걸 말해달란다. 허 참. 말해줄 게 없다.



아!

“고등학교나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죽었재?”

“네? 아니요?”

“아니야. 있을 거여. 잘 생각혀봐.”

“진짜 없는데...”

“그려? 근디 뭐가 이렇게 따라다닌디야... 그래서 갈피를 못 잡는 거여. 그게 자꾸 널 혼란스럽게 만든당께.”

“네???????????"

깜짝 놀란 여자가 토끼 눈을 했다.

"근데 진짜 없는데...”

“그려? 생각나면 전화 혀.”



에잇. 굿이나 한번 이야기 꺼내볼까 했더니 허탕이다. 얘가 하도 순진해보여 혹시 혹할까 했는데 실패다.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는 없어서 다행이다. 또 뭐 더 말씀해주실 거 없냐 묻길래

“애나 낳아서 빨리 키워.”

라고 했더니 실망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눈동자를 떨군다.  



아가씨는 머뭇거리며 지갑에서 5만원을 꺼냈다. 돈을 받으려고 오른손을 내미는데 갑자기 뭔가 미안하다. 멋쩍게 웃으며

“너무 짧게 끝나 뭔가 미안하구먼..."

이라 말했더니 괜찮다며 신발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는 오른손에 돈을 쥔 채 젊은 아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신고 있던 검정 양말을 벗어 가방에 우겨넣곤 인사하며 나갔다.



문득 허탈해진다.

‘점집을 접어야 하나’

이렇게 돈 벌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픈 남편 뒷바라지하려면 돈이 있어야재. 애들한테 짐이 되면 안되니께.’ 5만원을 꼬깃꼬깃 접어 허탈한 마음과 함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신당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다 설거지해놓은 콩국수 그릇을 들고 인쇄소로 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만과 편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