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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Nov 27. 2020

인생 가장 힘들었던 15개월이 지났다

나의 육아 일기는 대부분 가장 힘들었을 때, 고통을 승화하기 위해 갈겨 내린 글들이다.



그래서 육아 일기의 제목도 '딸에게 들키기 싫은 육아일기'가 됐고 실제로 내용을 봐도 행복보다는 절망과 고통이 만연해있다. 


글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 마디로 이거다. '육아 우습게 보지 말라.'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가정에는 평화가, 내 삶에는 활력이 돈다.


돌이켜봐도, 몇 번을 생각해도 육아와 살림만큼 힘들었던 일은 없다. 30여년의 인생에 많은 고난이 있었는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렇게 '죽겠구나' 싶었던 적은 없었다. 


우리 화이트칼라들이 대체로 비슷하지 않나. 살면서 무슨 육체적 고통을 느꼈겠는가.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는 시험에 낙방, 원하던 대학에 불합격, 취업의 잇따른 실패 아닌가. 언젠가 극복할 수도 있고, 그 길이 아니면 다른 곳을 찾아가면 되는 일들이다. 원하는 대학에 불합격했다면 다른 대학에 가면 되고 취업이 잘되지 않으면 계속 시도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창업을, 그 자본조차 없으면 아르바이트라도. (사랑하는 이의 상실은 예외로 둔다) 내가 살아왔던 삶에서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곳엔 항상 샛길이 있었다. 꼭 그 길만이 정답이 아니더라.


육아는 다른 길이 없다. 힘들어도 가야 한다. 아주 잠깐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 정도야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있겠지만 결국 양육은 오롯이 모부의 몫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서도 안 되고 '잘' 해내야 한다. 회사에선 번아웃이 오면 휴가나 휴직이라도 가능하지, 육아는 그게 안 된다. 사랑하는 아기에게 최선의 것과 최고의 사랑을 주기 위해 나는 항상 내 모든 것을 끌어내야 한다.


그게 되는 사람, 즐거운 사람이 있다.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는 분들도 여럿 있고, 육아휴직 시기를 인생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하며 아기와의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는 선배 엄마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나처럼 체력도 약한 사람은 육아를 행복하게 할 가능성이 꽤 낮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여기에 사회적 열망이 큰 사람은 더욱더 힘들 거다. 길게 보면 인생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1년 남짓의 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육아에는 아기가 주는 사랑과 행복에 상응하는, 아니 그보다는 살짝 덜한 고난이 수반된다. 그래서 엄마들이 '육아는 아이템이 중요하다'며 이유식도 아웃소싱하고 이따금 놀이 보모도 부르고 코로나 시국에도 문화센터에 가는 거다. 육아에 쓰는 돈을 아낀다면 그건 자기 자신, 또는 배우자를 축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주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랑과 행복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왜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둘째를 낳고 심지어 셋째까지도 꿈꾸겠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아주 흔한 말처럼, 고통은 지나간다. 남는 것은 아기와 내가 쌓은 견고한 신뢰와 사랑이다. 그 사랑이 주는 기쁨과 충만함은 감히 말하건대 어떤 이성의 사랑도, 얼마큼의 재산도, 사회적 성공도 줄 수 없다. 


복직을 한 지금도 우리 아기는 나를 보면 끌어안고는 놔주질 않는다. 엄마가 퇴근하면 아이에겐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온종일 한 놀이와 새로 배운 개인기를 보여주느라 밝은 얼굴을 하고는 종종대며 부단히 움직인다. 잘 때가 되면 내 품에 쏙 들어와서는 서로 배와 등을 맞대고 잔다. 보리새우와 대하가 꼭 껴안고 자는 꼴이다. 아기와 나누는 온기가 무척 따뜻해서 온몸에 쌓인 하루의 피로도 녹는다. '아기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 좀 보내야지'라는 다짐은 자발적으로 붕괴된다. 퇴근한 엄마는 자신만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냥 아기에 붙어 잠들어 버린다.


인생 가장 힘들었던 15개월이 지나고, 나는 엄마로 좀 더 성숙했다. 지금부터의 삶은 다소 준비된 엄마의 모습으로 이전보다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이만큼 고되고 도전적이면서도 풍요로운 일이 있을까. 사랑은 자아의 확장이면서 끝나지 않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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