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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Jul 13. 2021

영혼 갈아 넣었는데 성적이 왜 이래.

워킹맘의 일상은 늘 이렇다.

지난 3 호기롭게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부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공계 수업을 수강했다. 4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기 위해라는 포부였다. 이공계와 문과 수업이 적절하게 섞인  학교가 나에겐 최선이었고 커리어 도약의 주춧돌이  것이라는 청운의 꿈도 다시 한번 꿔봤다.


대학원 수업, 특히 실습 위주의 이공계 수업은 생각보다 팀플이 많더라. 3~4명이 그룹을 지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라는 것인데, 혼자서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를 읽으며 공상도 아닌 망상적 해석을 내리갈기던 10여 년 전의 학부와는 전혀 다른 학교 생활이었다. 하루가 머다 하고 팀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주말에는 아이를 남편에 맡기고 스터디룸에 나가서 온갖 소프트웨어를 돌리며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


개인 평가도 잘 받았으니, 웬만하면 A는 나오겠지. 6월 중순께 최종 팀 프로젝트 발표를 마친 내 소회다.


대학을 다니면서 A- 이하는 거의 받아본 적도 없고 C가 나온 수업은 딱 한 수업. 그나마도 재수강을 했다. 요컨대 성적과 평가가 인생에 절대적인 나다.


조금만 더 자랑을 하자면, 그런 성적 덕에 학부 8학기 내내 사비가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히려 장학금이 중복되어 포기하는 일도 일쑤였다. 남편 말로는 '헤르미온느의 현실판'이라고 한다. 재수 없겠지만 내 귀엔 아주 듣기 좋은 표현이다.


임시 성적이 공개된 날, 나는 그날 아침부터 꽤 상기됐다. 당연히 나는 또 장학금을 받겠지. 'A+ A+ A일까? A+ AA일까?' 웬걸. 10년 만에 충격적인 알파벳이 껴있네. 'B+'.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성적은 B+이다. 몇 시간 고민 끝에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정중하게 썼지만 결국 이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거다.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이게 뭡니까.'


보통 대학원은 절대 평가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A를 준다고는 하는데 꽤나 깐깐했던 교수님이었다. 상대평가를 했고 우리 팀의 수준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른 팀이 너무나 잘했기 때문에 평균 미달이라고. 성적을 조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뭐 어쩌겠는가. 납득해야지.


그즈음해서 3살 된 아이의 잠투정이 재발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에 몇 달째 하원은 내 담당이다.


 요즘은 오후 2시께 하원을 하러 가면 수면에서 오히려 각성해 도통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의 낮잠 시간은 나의 오후 근무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이가 후딱후딱, 또 쿨쿨 낮잠을 자주는 것은 나의 업무 퍼포먼스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아이가 낮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 날? 오늘 일 똥망이다.


며칠째 나는 오후 업무에 똥을 칠했다. 낮잠을 자지 않는 게 스트레스가 되어 '엄마랑 놀래'라고 하는 아이한테 소리도 두어 번 질러봤다. 그때마다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엄마가 왜 저러지'하는 표정으로 낙심하고 결국 지쳐 잠든다. 기다란 속눈썹을 안쓰럽게 내리깔고 자는 아이 얼굴을 보면 다시 또 아이가, 또 내가 애잔하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지.


나는 애도 제대로 못 보고 일도 멀쩡하게 못하고, 심지어 영혼 바쳐 참여한 수업마저도 B+이다. 뭐 하나 A+을 할 수 없다. 아니, A+ 욕심은 버려도 A0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안의 기준과 완벽주의가 '아이고 한심해'라며 조소를 보낸다.


나만의 틀이고 내가 만든 족쇄인 거 아는데, 나도 아는데, 그럼에도 그걸 못 충족한 나 자신에 설움이 북받쳤다. 이제 예전 같은 '에이스'는 어디서도 될 수 없는 걸까.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나는 그냥 B급 존재인 건가.


아이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끼 해줄 여력이 없으니, 그래도 제일 좋은 유아식 배달업체라며 유기농 무항생제만 쓰는 곳에서 시킨다. 일하면서 살림까지 하면 체력이 남아나질 않으니, 재택근무는 근무시간이지 집안일하는 시간이 아니라며 청소도우미 이모님을 부른다. 누가 보면 또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는데, 맞다. 배가 불러 터져도 늘 불만도 터져 나는 게 완벽주의자의 비극이다.


아마 나의 어머니, 당신의 어머니, 또 당신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겠지. 이런저런 우울감에 휩싸인 나에게 친정 엄마가 조곤조곤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 위로가 넘쳐나는 불만과 우울감이 빠져나갈 샛길을 마련해줬다.


"너는 지금 윷놀이판에 말 3-4개를 한 번에 올리고 움직이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1-2개만 올렸고. 네가 좀 더 느리고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 게임이 승산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결과는 누구보다 멋질 수 있지."


말 3개를 한 번에 짊어지고 가니 말 하나, 말 둘 게임판에서 빼내는 사람들보다 더디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몸도 무겁다. 그렇지만 이걸 잘 해내면 한 번에 3개 4개도 마칠 수 있다. 물론 육아도 일도 끝이라는 건 없다고 하지만 과정과 결과가 다양하고, 과장해서 포장하면 풍요롭기까지도 하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나, 그럼에도 직장에서 또는 학교에서 뭔가 해내는 내 자신을 볼 때 말이다. 그냥 그런 자기위안적인 생각으로, 또 아이를 통해 얻게 되는 말도 안되는 치유의 힘으로 오늘도 'B+이지만 괜찮아'라며 다독이며 살아야지. 내려놓는 게 안된다면 지치지 않게 당근이라도 계속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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