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 말기의 최고 무장(武將). 여포는 당시 무신들 가운데 가장 용맹하고 무술에 뛰어난 인물이라고 한다. 삼국지와 삼국지연의 등에 나오는데 무협지 참 좋아하는 회사 남자 동기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출산 후 이전까지의 삶은 전생이 됐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그렇다면 전생에 나는 왜 여포였나. 먼저 기자라는 직업과 연관이 되어 있다. 좋게 말하면 불의를 좌시하지 않는 성격, 단점을 지적하자면 아니다 싶으면 폭발하는 혈기.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데 눈치는 왜 봐야 하나. 여포로 태어나 칼을 못 쥐었으니 펜을 쥔 것 아닌가. 그렇다. 나는 언론계의 무장을 자처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니 거참 감사한 일일세.
불같은 성격 덕도 많이 봤다. 증권가에서 '아니다 싶은 일'들을 기사로 써서 제도를 바꾸기도 했고 사회부도 아닌데 금융 범죄를 취재해 여기저기서 잔 다르크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잔 다르크도 무장이구나. 아무튼 선비는 전혀 아니고, 장수에 가까웠다.
무장에게 풍류가 빠질 수 있을까. 들어는 봤나 술자리 좋아하는 알코올쓰레기. 술은 못 마셔도 술자리 만들고 사람 소개해주기 참 좋아했던 사람이다. 여의도 맛집 지도는 뇌세포처럼 탑재됐고 이태원의 숱한 라운지 바, 레스토랑, 선술집까지 여기에 뿌리고 다닌 돈은 또 얼마인가. 모임은 어찌나 많은지 여의도 또래 모임, 기자 모임, 업종 불문 또래 모임, 심지어 10살 위의 어른들로만 구성된 7X 또래 모임까지 명예 회원으로. 다양한 이들과 식도락을 즐기고 새벽녘까지 세상만사를 운운하던 시절이 있다. 그때 1년마다 추가된 명함이 1천개씩은 됐던가. 그게 이제 전생의 일이라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엄마가 되고 여포는 죽었다. 그는 여러 전리품만 흔적으로 남겨놨다. 수천개의 명함 중 남은 건 100개나 될까. 여포는 요즘 신사임당을 꿈꾼다. 꿈꾼다기보다는 아이가 생긴 이상 양처(良妻)는 힘들어도 현모(賢母)는 되고 싶다. 용암처럼 솟구치던 화는 아이 앞에서 호수와 같이 잠잠해진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울컥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 휴화산이다. 나를 백록담이라 불러다오. 남들을 무릎 꿇게 하던 여포는 요즘은 아기 기저귀 가느라 무릎 꿇는다. 아이고 내 무릎.
이제 내가 어찌 새벽까지 술이나 마시고 있겠으며 이전 같은 모임들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미 대부분의 모임에서 나는 유령 회원이다. 새벽에는 자다 깨는 아기 응대하기 바쁘다. 전생에선 '아직 밤은 길다'며 한잔 두잔 기울였을 시간인데 지금은 '아가, 지금은 자는 시간이야'라며 억지로 자는 척을 해본다.
여포의 혈기? 워워. 혈기는 고이고이 접어두시게. 이따금 꿈에서 그렇게 모험을 하러 떠난다. 혈기는 무의식에서만 발현해야지. 현실에서 아가 앞에 혈기 드러냈다가는 애 트라우마 생긴다. 혈기를 체력으로 전환해서 놀이터에서 쫓아다니고 아기 비행기 태워주고 이런 데에 쓰고 있다.
부모가 되는 일을 환생과도 비슷하다. 기존의 삶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게 비단 엄마뿐이랴. 남편들도 아빠가 되는 순간 이전까지의 삶과 단절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양육자인 엄마가 굉장히 분노한다. 백록담이 터져 아빠에게만 용암이 튈 수 있다. 우리 남편 역시 외향적인 사람이라 친구 모임만 수십 개는 됐을 텐데 요즘엔 군말 없이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거로 만족하며 산다. 돌아오는 길에 꼭 내 간식을 사 오며 '애 혼자 보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한다.
아직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한 번씩 이런 말을 한다. "집에서 애 보니까 좋겠다" "회사 복직하기 싫지?" "사랑하는 가족이 생기니 행복하지" 등등. 그래 그 말 하나 틀린 거 없지만 왜 다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걸 잊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기존까지의 내 삶을 끊어내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건 마냥 즐겁지 않다. 엄마라고 친구들과 미친 듯이 밤새 웃고 떠들고 아침 첫차를 타고 귀가하던 때가 없었을까. 보너스 받으면 명품 옷 하나 질러야 하는데 이제는 아기 교구부터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까지 휴가마다 몽골, 이스라엘 등 오지를 탐험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제는 국내 키즈 풀빌라나 검색한다. 아기가 없을 때의 자유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 누가 있단 말인가. 누구나 싱글이라는 전생이 있다.
희생이라면 희생이지만 아기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하고 있는 삶이기도 하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가 그럴 거다. 사랑을 이유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이성적인 근거는 없다.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 말고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유분방했던 전생을 이따금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뭐 전생은 전생 아닌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걸 알지 않나. 엄마로 환생한 나는 엄마로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여포가 그립기는 하지만 그때는 또 그때라는 시간에 봉인되어 있기 때문에 추억거리가 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그 추억을 주전부리 삼아 사는 인생이 앞으로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유는 잃었지만 그리운 청춘이라는 선물을 얻은 셈 치자. 그러고 보니 엄마가 되면서 얻은 선물이 두 개로구나. 사랑하는 아이와 청춘이라는 추억. 고맙다. 전생의 여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