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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이정하 <사랑의 이율배반> 중에서
사람 구경은 2층이 가장 적절한 높이다
어깨가 닿지도 않고 눈이 마주치지도 않을 간격
위에서 사선으로 바라보는 인체는 추상적이다
대칭이 사라지고 원근이 발생하여 비현실적이다
유리창을 이기는 목소리가 없어 덜 이기적이다
모두가 앞으로만 나아간다 뒤나 옆으로 가지 않고
공간을 가르고 시간을 찢으며 멈추지 않고 나간다
바닥은 서로가 서로에게 발바닥으로 건네는 바통
관 같은 차에 몸을 얹어서 신호마다 기차놀이 한다
빵집 앞 보도블록 교체를 하는 미니 포클레인 안녕
세 집 건너 노랑 간판의 카페가 화재로 그을려 있다
전단지를 전봇대에 붙이는 여인은 팔자걸음이다
상가마다 우주복을 입은 사내들이 양손에 주렁주렁 뚱뚱한 비닐주머니를 들고 나와 오토바이에 싣는다
횡단보도 끝에는 저 세상으로 건너갈 다짐으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출발선에 선 파이오니어
위에서 보니 서로의 높이가 가늠되지 않는다
앙상한 나무 우듬지에 꼬깔 엎어둔 모양의 새집
전깃줄과 가지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줄지어 있다
마지막 한 모금의 차를 비우고 나도 그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