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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준우 Dec 24. 2023

관심과 의심 사이

개미굴 2화

매우 수상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시끌벅적한 그들이었다.


건물을 나오며 복도를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3층에 있는 우리 사무실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우리 사무실 창밖으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그들은 건물을 나와 밖에서 이동할 때 항상 4~5명씩 그룹을 이루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인솔하는 ‘리더’가 있는 듯해 보였는데 남녀 구분 없이 그룹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그룹을 인솔하고 있었고, 혹여 외부인이 구성원들에게 말을 걸어오면 이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서 대화를 차단하고 대신 답변하는 형식으로 반응했다.


차림새 외 특이한 점을 또 하나 꼽자면, 각자 손에 공책이나 클립보드를 든 경우가 많았다.


건물 구조상 지하층에 화장실이 없어 가끔 위층 화장실 앞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서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서로 극존칭과 존댓말을 사용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K-친구들 모임인가 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는 사회 친구끼리는 존칭을 쓰는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흉흉한 사건·사고 뉴스 속, 내 생활 반경으로 들어온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모습은 내게 새로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 아닌 불편한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평일 저녁 8시경 퇴근하는 건물 밖에서 마주친 건물 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지하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건물 앞에 택시가 서더니 4명의 사람이 한 번에 내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택시 트렁크에서 캔 커피 5 박스를 꺼내 이를 지하실로 차례로 옮기며 분주히 움직였다.


‘바로 건물 1층이 편의점인데 굳이 커피를 택시까지 타고 가서 사 온다고? 저렇게 많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평소 이상함을 느꼈던 건물주 할아버지는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가요?”

하지만 이번 답변은 내가 들었던 답변과는 달랐다.

“아는 분 짐 옮겨드리러 왔어요.”


거짓말이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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