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8장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근이 닥칠 것을 미리 알아채고, 신세를 진 적이 있었던 한 여인에게 귀띔을 해 준다. 빨리 이 곳을 피해 7년 동안 다른 지역에 거처를 두어서 살 길을 찾으라고 말이다.
이렇게 그는, 불길한 앞날을 내다보고 자기하고 친한 사람의 은신을 돕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도무지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비극이 눈앞에 빤히 보이지만 그 누구도 피신시키지 못한다.
동족의 원수가 될 인물을 눈앞에 맞닥뜨렸다. 그자는 앞으로 끔찍한 일들을 거침없이 벌일 것이다. 피눈물 나는 일들이 그자를 통해 곳곳 도처에서 벌어질 것이다. 피해자는 동족들이다. 민족의 원수를 눈앞에 두었다.
그렇다면 당장에 암살을 해서라도 그를 처단해야 옳지 않겠는가.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의 책임으로써, 동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한 사람의 양심으로써, 비극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선지자는, 잠자코 그자를 쏘아보기만 할 뿐이다. 상대가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하니, 한참을 무섭게 노려 보았으리라. 죽일 듯 미움이 복받쳐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죽이지는 못했나.
여기서 나는 그 어떤 비애를 느꼈다.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자의 비통한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기근을 대비해 누군가를 도울 수는 있었지만, 학살을 막기 위해 누군가를 처단하지는 못했다.
그저 앞날을 내다보고 그 일에 대해서 말을 할 뿐이다. 비겁하다고 해야 할까,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애처롭다고 해야 할까. 성경은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의 이러한 모순 혹은 비애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서는, 이렇다 할 해명이나 변설이 없다.
자기가 가진 그 어떤 것으로 마음껏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가 하면, 자기가 가진 그 어떤 것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들마저도 때로는 무겁게 내리누르며 스스로를 참아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앞일을 내다볼 줄 아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한 사람이 품고 있었을 그 어떤 비애가 오늘따라 아프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