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7주 차. 이웃 만한 태교가 없다
#1 딸기
이웃에 사는 친구가 딸기 한 팩을 집 앞에 놓고 갔다. 자기 임신 시절에 철분 많은 딸기를 즐겨 먹었다면서 지나는 길에 맛있어 보여 한 팩 사서 우리 주려고 왔단다. 나는 전화기 꺼져 있고, 수현이는 전화 안 받아서 문 앞에 놓고 간다는 쪽지가 함께 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딸기를 쳐다보며 전화를 걸었다. 얼굴이나 보고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아쉽다고 나중에 다시 놀러 오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너는 두 개만 먹으라고 한다. 산모한테 좋은 거니, 아빠는 적당히 먹으라는 소리다. 그래, 알겠다.
#2 백과
동네 형이 두꺼운 책 세 권을 말도 없이 건네준다. 갑자기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답도 없다. 보니까 임신/출산에 관한 책들이다. 벌써 세 아이의 아빠인 그 형은 그저 미소만 띨 뿐이다. 이제 첫 아이를 가진 새파랗게 어리숙한 동생은 그저 알았다는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 형뿐이 아니다. 책 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가 많이 필요한가 보다. 예전 어렸을 때 이모가 출산을 앞두고 두꺼운 책들을 머리맡에 두고 지내는 것을 본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임신, 출산에 관한 책들은 두껍고 무겁고 활자는 큼지막하다. 그나저나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볼까.
#3 임부복
발에서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라인은 다른 옷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복부 부위가 다른다. 신축성 강한 소재로 넉넉하게 허리 부분을 감싸는 스타일로 만들어진 바지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원피스도 마찬가지다. 허리 라인이 풍성하게 확장돼서 그 품으로 치마까지 내려온다.
엄동의 추위에 기모 처리된 레깅스가 필요할 거 같아 하나 사서 수현한테 건네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더 이상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배가 점점 불러와서 답답해진 것이다. 때마침 동네 언니한테 받은 임부복 중에 특별한 레깅스를 발견하고 그걸 입기 시작했는데, 안성맞춤이 따로 없다고 엄지를 치켜든다.
그 뒤로도 언니들한테 임부복을 몇 벌 더 받았다. 한 번 입고 다시는 안 입을 옷들이니 서로 나눠서 돌려가며 입는 옷이 된 것이다. 청바지부터 원피스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하나하나 정갈하게 입고 이웃에 다른 산모들에게 전해주는 손길에 온정이 묻어 있다.
#4 태교
얼마 전 포털에 태교 관련 기사 제목 하나를 본 기억이 난다. 궁금해서 들어가 읽어보니, 부부가 정답게 대화 나누는 것 만 한 태교가 없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클래식 백날 들어도, 부부싸움 한 방에 그거 다 소용없게 되지 않겠나.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요 며칠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니, 엄마 아빠가 정답게 대화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이웃에 사는 이모, 삼촌들이 딸기며, 임신 백과며, 임부복이며, 들고 찾아오면 그 만 한 태교가 또 어디 있겠나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보다 더 좋은 태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