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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Apr 17. 2022

당기지도 밀지도 마시오

통곡의 문은 열리지 않아요

아무리 당기고 밀어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유리 위에는 이곳은 문이 아니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있다. 눈으로는 글을 응시하면서도 손은 문고리를 잡고 덜컹덜컹 두 번 세 번 당겨본다, 감히 문 주제에 세차게 흔들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눈치다. 원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문 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고민한다. 힘내라고 해야 할지, 거기는 화장실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할지.


“이곳은 화장실 및 출입문이 아닙니다. 정문 또는 후문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동네 스타벅스 벽에 있는 막힌 문-나는 ‘통곡의 문’이라고 혼자 마음대로 이름 붙였다-에 붙어있는 안내문이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매장 후문에서 오른쪽 방면에 위치한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밀번호도 써 놨다. 이 정도면 상가 이용객 전용으로 설치한 도어록이 무의미할 정도로 다 알려준 셈이다. 가게에 들어와서 주문은 안 하고 막힌 문 앞으로 직행하는 무전 방뇨 예정자도 몇 번 봤다. 이렇게 관대한데도 ‘통곡의 문’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은 글씨로 쓰인 화장실 위치와 비밀번호 안내문 위에 ‘TOILET’을 상징하는 픽토그램을 큼직하게 올려놓았다. 가장 큰 원인이라 본다. 멀리서 보면 ‘화장실은 바로 여기입니다.’ 하는 식으로 눈에 띈다. 이곳은 화장실도 출입문도 아니라는 안내문이 옆에 한 장 붙어있지만, 시선 강탈에는 실패했다. 문자보다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일단 문고리를 움켜쥐고 본다. 동시에 생각한다. ‘화장실이 아니라고?’


요의를 느끼는 사람에겐 부조리나 다름없는 폐문을 보고 있으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확증편향이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여지가 있으면 ‘문에 화장실 표지그림이 붙어있다니, 화장실이 틀림없어.’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나에게도 그런 문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가 구내식당에 나오는 날이면 식사 시간이 코앞인데 갑자기 메신저로 점심 약속 있냐고 물어보던 사람이 있었다. 남이 들으면 놀랄 정도로 타인과의 교류가 적은 나에게는 적잖이 신기한 일이었다. ‘셋이 아닌 둘이 밥을?’ 처음에는 털털한 성격인가 보다 하고 말았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자 ‘혹시 생각보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소지가 자라났다.


‘이렇게나 종종 점심을 같이 먹다니, 나를 좋게 봐주는 게 틀림없어.’ 확실하지 않은 마음은 이내 합리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무럭무럭 자라났던 나의 자신감은 카카오톡 메시지의 회신 기간이 무한에 수렴하면서 일말의 근거도 없었음이 드러났다. 


개같이 까이고 난 뒤에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점심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급하게 사용하기 편리한 상가 화장실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몇 번씩 덜컹덜컹 당기면서 착각했다. ‘이게 호감이 아니라고?’


아무리 밀당을 해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애초에 열리는 문이 아니라는 걸, 사실은 문도 아닌 철벽임을 처음부터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조금 더 명확하게 표시해놓길 바라는 건 무리이니 까이기 전에 알아서 센스를 단련하는 수밖에.




* 커버 사진 by Ronnie Pitman(CC BY-NC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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