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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Dec 23. 2023

크리스마스 캐럴


크리스마스 캐럴          

 

잠의 나라에서 추방될 무렵 당신의 어깨가 하루하루 노랗게 물들었다 잠의 알리바이를 추적하는 동안 노랗게 물든 당신을 깨닫지 못했다 구름인 듯 잠은 떠다니고 잠들지 못하는 어린 짐승이 되어 나는 깊은 겨울로 망명했다 나는 이미 얼었으므로 잠의 나라를 핑계로 삼았다 밤낮의 안팎으로 펄럭이는 눈보라처럼 체감온도가 바닥을 향해 질주했다 질주하는 바람이 거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본능보다 무거운 잠이 노랗게 물들었다 동면은 길었다 허공에 떠다니던 잠은 뒤바뀔 밤낮의 전조前兆였을까 나는 당신에게 은행잎을 빚지고 있었다 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저녁과 그 밤의 온기를 빚지고 있었다 당신의 어깨에서 잠이 흘러내릴 때 당신이 전송하는 한파를 품기로 했다 순서없이 뒤섞이던 날들이 겨울의 포로가 될 즈음 나는 발 없는 잠을 부지런히 수소문했지만 다시는 당신의 색깔일 수 없으므로 다시는 당신을 물들일 수 없으므로 당신은 내 것이 아니었으므로 당신이 남기고 간 겨울이 노랗게 물들어 저물었을 뿐 정처없는 계절의 모퉁이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을 뿐.  

     

<유령의 시간, 이정섭, 애지>


        


                                              

까마득히 돌고 돌아      

무려

처음이다. (시집의 맨 마지막 구절)          






    

문득, 라임 오렌지나무의 제제 생각이 난다. 함께 울었던 그 밤. 제제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오는 크리스마스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 부르지 않겠다. 징글징글 징글벨 울리지도 않겠다. 착한 아이에게 줄 선물을 기다리며 울지 않았던 제제들은 착하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산타 덕분에 지금 깊은 겨울로 망명 중일 테니까.

오는 크리스마스엔 나는 제제와 같이 울겠다. 울면 안 되는 줄 알고 울지 않았던 시간만큼 울지 못한 울음을 차라리 맘껏 울어보겠다. 실컷, 힘껏 울고, 한잠 깊게 자고 나면. 얼어붙은 몸도 저절로 녹고 곧 샘이 흐를 테니까. 그렇게 천천히 나도, 제제도, 스스로 알아서 각자에게 맞는 각각의 봄을 맞겠다. 그러니까 징글징글 징글벨  기쁨을 함께 누리자고 슬픔에다 슬픔을 더 보태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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