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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Jan 23. 2024

뫼비우스의 돈

돈에 관한 묵상.

 

몸으로부르는 연가,김병호시집, 아시아


뫼비우스의 돈


 그는 돈의 한쪽 끝을 백팔십도 비틀어 다른 끝과 이어 붙였다. 끝없는 돈을 만들고 싶었으나 끝없이 안팎을 돌뿐, 끝이라도 있으면 돈도 아니었다. 그림자가 가장 짧은 낮에 출발해 돈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아오는데 꼬박 스물네 시간이 걸렸다. 세종대왕을 밟고 출발했지만 돌아온 곳에서는 혼천의가 그를 맞았고, 낮이 있을 자리에 밤이 웅크리고 있었고, 그래서 꿈 대신 현실 자리가 사나웠다.

 한밤에 출발해 다시 하루를 걷고 집에 오면 황달 걸린 신사임당이 정오의 구김살 없는 뜰에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왜 돈의 얼굴에는 돈에 채무 없는 사람들 얼굴을 꾸어다 놓았느냐고 따지자 꿈을 꾸듯 돈을 꾸면, 아랫배에 힘을 주면 가르릉 환풍기 소리가 들리지 않듯, 돈의 등에 뭐라 써 있는지 보인다 했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아 다시 등진 세계에 주저앉으면 환풍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아랫배가 힘을 주었다. 소화 못한 시간들 탈진으로 쏟아지자 살모넬라균이 뱃속에서 기지개를 켰다. 말이라도 안 돼야 돈이 아니었다.    


       

능 콘돔

 -뫼비우스의 돈 2          


 그것은 누구와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몰랐다고 하나, 별의 행간을 읽지 못하는 일 또한 한 시대의 죄악이었다.      

 그것을 끼는 순간 코뿔소는 물론이고 박쥐, 심지어는 들판에서 나부끼는 양귀비꽃과도 몸적으로 얽힐 수 있었다.      


 -상대의 정체가 무슨 상관인가? 내 욕망의 솔기가 터져 새순이 돋을진대,      


  어느 날 그는 5백 년 된 노송과의 관계를 술회했다.

 -그는 깊고 현명하며 아주 느리게 느낄 줄 알았으니 그는 무엇보다 시간이 발효된 깊은 향기를 가지고 있되 시간이 과농축된 끈적임으로 헤어 나오는 일은 고되고 고되었으니, 나에게는 너무 긴 상대였고 그에게 나는 너무 짧았었기에 또 하나 비극이기는 했음으로,

 이런 경험이야 확인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것이나 다음날 천년 고찰을 지키던 노송 하나가 이유 없이 말라죽었다는 뉴스는 모두가 아는 것이었다.     

 이것은 뜻밖에 이종 간 교배의 길을 터준 매개가 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으되 부작용으로 백신 없는 마음의 역병이 돌았다. 이후 더 간편한 방법을 찾다가 만들어진 것을 동네 사람들은 돈이라 불렀다. 이 또한 어두운 기운의 소행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몸적 얽힘마저도 모든 형태의 장벽을 넘으려 하는 세태의 배설물이라는 소문 한 줄기가 마을에 걸렸다.   

            

     


 


세종대왕을 밟고 갔다가 욕망의 밤을 경험한 자는 어둠 속에서 혼천의를 보았을 것이다. 이후 혼천의를 가슴에 품었으나 그의 꿈은 사나워진 현실 앞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황달 걸린 신사임당처럼 돈의 위력 앞에 누렇게 떴을 테지. 천년 노송도 말라죽게 만드는 만능 콘돔의 무한 증식을 목격했을 테니까.   

욕망의 새순이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천년 노송이 말라죽고, 관계하는 모든 것들이 잘려 나가고 있다는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윤회의 수레바퀴 밑에 깔리는 것이 자신임을 깨닫게 될 때까진. 그런즉 우린 모두 단세포 생물이다.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왜 느닷없이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을 저지른 그 남자의 대사가 떠오를까. 자신의 사랑이 왜 죄가 되는지조차 모르는 그 남자의 외침. 제 욕망을 주체 못 해 가족 모두를 수렁으로 빠지게 한 장본인은 제 욕망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을 심판하기 전까진 깨닫지 못하는 단세포생물이었다. 그의 욕망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합당했고 모두 돌로 쳤다. 그런데 따져 보자. 우리의 물신주의는 그 욕망과 다른가. 제 돈이 팝콘 튀기듯 불어나기만 바라지 자신의 욕망이 돈에 채무진 일없는 자마저 인플레이션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음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단세포 생물이지 않은가. 설국열차의 레일 위에서 레일 밖을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는. 함께 깨닫고 다른 대안을 노래하지 않는 이상 이 구조 속에서 먼저 죽는 이는 나이고 당신은 다음 차례일 것이다. 자본의 무한증식의 수레바퀴는 우리의 운명이 되어버렸고 우리의 상상력 빈곤은 만능 콘돔 제국의 수레바퀴 아래 차례를 기다리며 조용히 깔려 죽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불만 제기는 가지지 못한, 무능력한 인간의 시기심일 뿐으로 결론 나고,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분노의 언어 또한 감정배설에 지나지 않는 헛바퀴를 돌리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으니...

정작 빈곤은 물질의 빈곤이 아니다. 다른 삶을 상상할 의문도, 투지도 없다는 것. 설국열차 안에서 열차 밖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 진짜 빈곤은 그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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