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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Apr 19. 2024

뒤로 걷는 시간 1

 여자는 오랫동안 땅만 보고 걸었다. 마치 곧 땅을 뚫고 들어가라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여자의 몸은 땅을 향했고 결국 땅 아래 당도했다. 남자는 종종 여자에게 소리쳤다. 제발 저 위 하늘을 좀 보라고, 저기 별이 보이지 저 높은 곳을 좀 보란 말이야. 그러나 여자에게 위를 바라보는 일은 늘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여자는 자신이 없었다. 위를 볼 때마다 번번이 무력감을 느낄 뿐이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에게 산다는 건 다만 하늘을 향해 걷는 일이었으니까. 사실 남자뿐일까. 그것은 지상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믿음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남자는 옳았고, 남자에게 여자는 틀렸다. 남자는 맘껏 소리쳤다. 자신이 옳으니 자신을 따르라. 저 하늘 위를 좀 제발 쳐다보라. 푸른 하늘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계절의 변화를 좀 살피라고. 그렇게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즐기라고. 다수의 그들처럼.

 여자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의 변화 속도에 맞춰 잘 적응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세상의 속도는 여자보다 늘 지나치게 빨랐다. 해를 바라보던 해바라기가 해가 지면 지는 해를 따라 땅으로 고개를 떨구듯 여자의 머리는 그렇게 자꾸만 아래로 쏠렸다. 사실 몸보다 머리가 지나치게 무거운 여자였다.

여자는 점점 다수의 목소리, 남자가 옳은 소리라 믿는 그것들을 온전히 소화하기 어려웠다. 들려오는 주장들. 살아가는 방식들. 서둘러 익히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라며 재빠르게 모방할 줄 아는 그들 사이에서 몸보다 머리가 무거워 느린 여자는 종종 숨이 막혔고, 달팽이처럼 몸을 말아 감고 어딘가로 점점 더 숨고만 싶어졌다. 여자는 제발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겁에 질릴수록 여자의 몸은 자꾸만 달팽이처럼 움츠러들었다.       


여자는 자신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나는,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세상의 외핵과 내핵이 만나는 지점. 존재의 심연에 이르는 길. 여자는 그런 질문이 자기 꼬리를 뱅뱅 도는 어리석은 질문임을 확인하게 될 뿐이라 해도, 사람들이 들려준 오래된 답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여자는 의문 그 자체를 사랑했다. 세상의 속도는 땅속 깊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못다 한 질문을 여자는 이제 맘껏 하기로 했다. 왜 모두가 늘 저 위만 바라보려는 것일까. 왜 오직 외부에 잘 적응하는 것만을 생의 목표인 듯 살아가는 것일까. 가만히 오롯이 우주적 차원에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에 오래 머무르는 일. 그것만으로도 어떤 생은 충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것은 정말 다수의 주장처럼 이 자상에선 딱히 쓸모없는 일일까.

여자는 점점 왜라는 질문을 할 겨를 없는 세상의 속도에 여자는 현기증이 났다. 거기,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하는 다수의 삶의 방식에도 저항이 일었다. 적응이 어려워 저항 물질이 생겨난 것인지 저항 물질이 유전자에 내장되어 적응을 어렵게 하는지 알길 없으나 분명 여자에겐 세상의 상식에 동화되기 어려운, 정확히 알 수 없는 편치 않은 감정들이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잠자고 있다가 결국 꿈을 타고 나와 여자의 몸을 공격하고 여자의 감정을 흩트려 놓았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여자에겐 격리가 필요했다. 세상으로부터의 격리. 다수의 목소리와의 격리 여자에겐 그렇게 혼자만의 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자는 몸을 말아 감고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죽은 척하기로 작정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몸을 말아 감고 자기 내부의 궁전. 자기만의 방에서 가만히 오래 쉬기. 한동안 여자에겐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확인했다.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만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여자는 적어도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 그들은 여자를 모른다는 것. 깊게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여자를 재단하고 있었다는 것. 대개는 앵무새처럼 다수의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여자는 그들의 말에 주의를 크게 기울일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더는 없다는 것. 그러므로 이젠 오직 자신의 본능대로,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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