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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Jul 01. 2021

왜 ‘인간’인가?

눈먼 자. 오이디푸스 2


"답은 ‘인간’이다. 아기 때은  네발로 기고, 자라서는 두발로 걷고, 노년에는 지팡이를 짚고 세발로 걷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가 나타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를 구했다. 그의 답은 ‘인간’이었다. 그렇게 답한 근거는 반드시 이야기 속에 있기 마련이다.( 팩트를 기반으로 오이디푸스의 심정을 추정해본다. )

 

테베로 오기 전 그는 코린토스의 왕자였다. 친아버지 라이오스에 의해 버려졌지만, 그는 코린토스 왕의 아들로 멋지게 자란다. 그도 모세나 주몽처럼 힘이 세고 용맹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시기하는 자들이 있었을까. 자꾸 이상한 소문이 돈다. 바꿔치기당한, 주워 온 자식이라는 거다. 뭔가 개운치 않다. 부모님께 물어도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신화에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이다. ( 신화 속 영웅은 늘 버려진다. 버림받는다는 건 결핍인 동시에 독립을 위한 영웅의 필수 과정이다.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독립도 없다. )

그는 답답한 마음에 델포이 신전을 찾는다. 도대체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 고민의 출발이자 자아의식의 출발이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신탁을 듣게 된다.   

   

“너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취하게 될 것이다.”      


끔찍하다. 그럴 리가 없다. 안될 일이다. 그는 이 끔찍한 운명을 피하기로 결심하고 부모 몰래 궁을 떠난다. 그러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성장통의 시작이다. 우여곡절의 고통을 겪으며 이 젊은이는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인간의 운명을 제멋대로 결정짓는 망할 놈의 신탁.'  이런 반항심이 들지 않았을까.

방랑 생활의 끝에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는다. 오이디푸스의 말이 죽자 화가 나 싸우는데 수레에 타고 있던 노인이 뾰족한 침이 달린 지팡이로 머리를 친다. 그 지팡이를 치니 지팡이가 돌아가 다시 노인의 머리를 쳤고, 그 자리에서 노인이 죽었다.( 오이디푸스의 진술이다. ) 정당방위라 더라도 오이디푸스는 그 자리를 목격한 자도 함께 죽인 모양이다. 그는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고, 테베로 입성한 겁 없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테베 입구에 스핑크스가 있다. 살아남아 테베로 들어가려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고 있다.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가뜩이나 신탁 때문에 벌어진 자신의 불행한 운명에 지금 그는 이를 갈고 있지 않았을까. 스핑크스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이들 앞에서 그는 수수께끼를 들으며 좀 전에 죽이고 온 지팡이 든 노인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경험 속에 답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 공식에 근거한다면 이 지팡이도 유용한 단서다.)

사실 정답을 맞히고 안 맞추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정답을 맞힌 것이라기보다 ‘나는 인간이다.'라는 당당한 선언. 이제 신탁 따위에, 신녀의 모호한  따위에 굴복하지 않겠다. 운명 따위는 없. 모든 건 내 의지에 달린 것일 뿐.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정답을 맞힌 게 아니라 내가 말한 답이 정답인 거라고. 그의 모습에서 매듭을 풀라고 한 신탁을 듣고 그 자리에서 매듭을 칼로 잘라버린 알렉산더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인간’이라는 그의 답은 두발로 홀로 서기 위해 신이나 운명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선언. 신탁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했던 오이디푸스의 경험이 낳은 신탁과의 맞짱 뜨기 같다. 인간의 자유의지 앞에서 운명론적 요소를 지닌 당시 유행하던 점술이나 예언과 같은 알쏭달쏭한 신의 소리에 의존해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 군상들이 바로 스핑크스의 덫으로 보였을 테고, 오이디푸스는 두려움 없는 용기로 이와 맞서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던 거라고. 죽자고 덤비는 인간 앞에 신도 당해낼 도리가 없지 않았을까. 두려워 함부로 대하지 못한 신녀를 그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너뜨렸다는 것의 함의는 알아서 추측하기로 하자.


그는 자신을 네발로 대지에 기대어 본능과 운명대로 살아가지 않고 운명을 개척해가는 자유의지를 가진 두 발 인간이라 믿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테베를 구했고 왕이 되어 태평스러운 시대를 열었다고 자부한다. 운명론적인 신에 대항한 인간의 승리처럼 보인다.


 이러한 그의 '인간'선언은 그리스 인문주의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탄생한 시기는 기원전 5세기 무렵이다. 이 시기는 동방의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살라미스 해전을 치르고 빛나는 승리를 한 이후이기도 했다. 동방에서는 스핑크스가 선한 수호신으로 그려지는 반면 서양 신화에서는 유독 부정적으로 그려진 뿌리에는 동방 문화를 유입하면서도 이에 대한 그들의 반감이 신화의 상징 속에 녹아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스핑크스는 거대한 뱀, 티탄족의 자손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자신들이 상대한 제국이나 민족, 그들의 문화적 특성이 신화 속 스핑크스와 같은 괴물로 표현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스핑크스를 물리친 함의는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동방 제국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의 가치체계와 문화가 이룬 승리라는 그리스적 자부심과도 연관시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맞짱의 결과가 계속 승리만 낳은 것도 아니고, 저자 소포클레스의 입장도 그의 '인간' 선언을 승리로만 그려내고 있지도 않다.




이제 오이디푸스의 남은 인생을 추적해보자. 적어도 정답이라면 그가 말한 답의 근거가 오이디푸스의 서사 속에서 명확하게 증명되어야 한다.  지팡이를 짚고 선 세발 인간의 함의는 무엇일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다시 테베에 역병이 찾아온다. 구원을 바라는 백성들의 기도와 곡소리가 퍼진다. 사람들은 고통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다. 왕에게 호소하고 신에게 호소한다. 살려달라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문제를 풀길이 없다. 이젠 그도 속수무책이다. 그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헤아리며 불면의 밤을 보내온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한계 상황이다.      


이때 크레온에 의해 신의 뜻이 전달된다. 피를 부른 자를 찾아내 심판해야만 역병이 물러간다고 한다. 신탁을 전한 크레온에 따르면, 선왕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추적하려 했지만, 과거사는 묻어두라는 스핑크스의 권고로 그동안 범인을 추적하지 못했지만 이제 신탁은 이를 해결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단 백성들의 곡소리와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 그는 직접 범인을 추적하기로 한다. 먼저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에게 묻는다. 그는 신들의 모습을 인간에게 전한 죄로 눈이 멀게 된 자였다. 그는 범인을 알지만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오이디푸스에게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뿐이니 진실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러자 오이디푸스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며 진실을 밝히라고 끈질기게 추궁한다. 그러자 "범인은  바로 당신이오. 범인을 심판하겠다고 한 그대로 바로 당신이 심판받게 될 것이오."라고 예언한다.


이쯤 해 과자신이 사람을 죽여 피를 부른 일을 떠올리며 물러났다면 더 이상의 비극은 멈췄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선왕 라이오스의 살해범이 아니라고 믿었고 기어코 이를 증명내려했다. '억울하다. 지난번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도 해결 못한 자가 아니던가. 신의 예언자랍시고 그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라고?' 사실 내게도 무죄를 입증하려는 그의 모습이 당연해 보인다.


테이레시아스는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통찰적 예언으로 오이디푸스가 놓치고 있는 죄를 깨닫게 하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이미 그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다. 크레온과 함께 모의하여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자들의 음모로만 여겨질 뿐이다. 자신을 모함하려 드는 자들에게 치밀한 와 물증으로 명명백백하게 자신이 죄가 없음을 증명하여 심증으로 자신을 모함하는 저 세력을 기필코 단죄하고 말겠다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왕비 이오카스테와 크레온 그리고 오이디푸스의 권력을 동등하게 하기로 약속했으나,  이것이 지켜지고 있는지 크레온이 그에게 되묻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라이오스 왕이 살해된 시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치밀한 논리로 검증 과정을 거쳐 간다. 문득 날카로운 발톱의 의미가 그의 이런 특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진다. 지적 논리로 무장해 신녀를 굴복시켰을 지도. 그런데 이번엔 과정이 결과적으로 자기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추적해 가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만다.  " 자신의 재주로 파멸을 맛보게 되리라"는 테이레시오스의 예언대로 되고 말았다.


이 모습은 또한 라이오스 왕에게  유기한 아들이 살아 남아 자신을 친 과정, 침 달린 지팡이로 그를 치니 그 지팡이가 돌아와 자신을 친 과정과도 흡사하다. 타자를 향한 심판의 화살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이는 예정된 운명일까. 자신의 불완전성을 보지 못하고 타인을 비난한 그의 독선이 불러들인 비극일까.

 

코린토스 왕의 아들로 자랐지만 그의 실제 아버지는 테베의 선왕 라이오스였고. 그는 그가 길거리에서 죽인 그 노인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는 라이오스의 아내이자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사건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아내 이오카스테는 그만 추적하라고 그를 말리지만 그는 기어코 끝장을 보고 만다. 운명을 거부하며 맞선 그의 삶이 도리어 운명을 실행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운명의 비극 앞에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자결한다. (스핑크스도 과거사를 덮었고, 자결했다. 닮았다.) 이를 보게 된 그는 자신의 두 눈을 찌른다.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자부한 자신이 사실은 진짜 눈먼 자였음을 깨닫는 순간 어떤 마음이었을. (진실을 추적한 결과가 결국 자신의  멀게 한 결과를 고 마는 그의 모습은 신의 발가벗은 모습을 인간에게 전한 죄로 눈멀게 된 테이레아스의 운명과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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