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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게구름 Jan 06. 2019

자신만의 언어 찾기

거장과 일반 예술가를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거장의 작품은 인물이든 풍경이든 대상과 상관없이 뭔가 하나로 관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보는 작품도 그 거장의 작품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거장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전달한다. 그렇기에 예술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완성하기 위해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힘든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가의 언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거장과 평범한 예술가로 갈리는 것이다. 어찌 됐든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내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고 예술가라 불리기 위한 기본 요소이다.


자신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창조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거장들 역시 처음에는 스승이나 위대한 화가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같이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은 미대에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유명 화가의 제자가 될 수도 없다. 모방 역시 다른 사람의 가르침 없이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하는 수 없다. 훌륭한 작품을 많이 보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해 예술적 모방을 해보는 수밖에...  


예술적 모방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단순히 흉내 내어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재현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응용까지 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술적 모방의 첫걸음은 시간 날 때마다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화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특별전을 찾아다니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더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특별전은 그 화가의 일생에 걸쳐 걸어온 길을 충실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과 추구하는 방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전시회에 가면 일단 작품 하나하나 꼼꼼히 본 후 처음으로 되돌아와 다시 한번 쭉 훑어본다. 이때는 개별적인 작품보다는 전체적인 맥락 하에서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전시는 2016년 겨울 덕수궁에서 열린 유영국(1916-2002)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다. 유영국은 일본 유학시절 추상미술을 접한 후 귀국하여 1960년대 초까지 단색 추상으로 유명한 김환기 등과 신사실파, 모더 아트협회 등 당대 한국의 가장 전위적인 미술 그룹들을 이끌며 추상 미술의 확산과 발전에 헌신했다. 1964년 돌연 그룹 활동을 그만두고 2002년 타계할 때까지 수도자의 자세로 매일 활로 작업실에서 자신만의 추상세계를 찾는데 몰두했다. 유영국은 서양의 절대 추상을 받아들였지만 그의 그림 속의 기하학적 형태와 색깔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와 자연이 느껴진다. 자신의 고향인 올진의 산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추상이란 언어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낸 것이다.



이전 글들에서 소개했던 2016년 작품을 보면 느끼겠지만 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아도 무엇인지 연상은 된다. 유영국이 단순한 도형과 색으로 자신의 고향을 그려낸 것을 보면서 앞으로 추구헤 나가야 할 방향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나의 작품은 해설 없이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추상미술과 현실을 재현한 구상미술의 경계점에 서 있을 것이다. '구상과 추상 미술의 경계' 이것이 내가 평생 작품 활동을 하면서 찾아가야 하는 지향점이다.




유영국 특별전을 보고 난 후 그의 기법을 모방하여 그려 본 것은 몇 작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운대>, 캔버스에 아크닐, 2017.1.21.

2000년대 초 해운대의 H콘도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족들과 갔었다. 주변에 막히는 것 없이 바다가 보이고 해돋이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0년 정도 지난 후에 다시 갔을 때는 주변에 고층건물들로 빼곡히 둘러싸여  건물 사이로 간신히 바다가 조금 보일 뿐이었다. 요즘 속초도 그렇다고 하던데, 과연 옳은 일인가 싶다.


< 山河>, 캔버스에 아크릴, 2017.2.18.

몇 년 전 잠시 춘천에서 직장을 다닌 적이 있다. 가끔 고속도로 대신 경춘국도로 북한강을 따라 집에 돌아왔다. 북한강은 깊은 산 사이를 지나 도시와 논밭을 구비구비 흐른다. 이런 모습은 북한강 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서든 강을 따라 운전하다 보면 볼 수 있는 풍경인 것 같다. 이런 풍경이 전형적인 우리나라 산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순천만>, 캔버스에 아크릴, 2017.6.3.

해질녘 순천만 습지는 너무 아름답다. 갯벌이 끝없이 펼쳐 저 있고 갯벌 사이 물길로 배가 한가로이 오간다. 옆에 있는 산과 갯벌, 물길이 하나 되어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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