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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게구름 Sep 29. 2019

인공지능이 미술에 던지는 몇가지 질문


2016년 4월 5일, 17세기 네덜란드 의상을 입은 한 남자의 초상화가 공개됐다. 한 눈에 봐도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렘브란트의 작품이다. 이 초상화는 1669년 세상을 떠난 렘브란트의 미공개 작품도 솜씨 좋은 전문가가 흉내낸 위작도 아니다.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대, 미술관 2곳과 마이크로소프트가 18개월 동안 협력하여 완성한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렘브란트의 회화 346점을 1억 4800만 화소별로 3차원 정밀 측정하여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한 후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여 렘브란트 작품에 나타난 인물의 특징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렘브란트의 작품에 나타난 가장 보편적인 인물은 갈색 수염이 난 30~40세의 백인 남성으로 하얀 깃이 달린 검정색 옷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 인물을 렘브란트 특유의 질감과 명암 등으로 완벽하게 모사한 것이 위의 작품으로 3D 프린터로 13개층을 쌓아 제작했다.



‘넥스트 렘브란트’를 다룬 Newsweek의 기사에는 두가지 상반된 의견이 소개되어 있다. 가디언의 미술 평론가 조너선 존스는 넥스트 렘브란트에 대해 “인간이 만든 창조적인 작품을 끔찍하고 천박하며 무감각하고 영혼 없이 흉내 낸 모조품”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 론 어거스터스는 “이 프로젝트에서는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데이터가 이용됐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영혼을 건드리는 작품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대립되는 의견 속에 인공지능 미술이 풀어야하는 숙제가 담겨 있다. 우선 존슨의 말 중에 "무감각하고 영혼 없이" 부분을 보자. 인공지능은 생명체가 아니다. 그러기에 애당초 영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이란 작품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무엇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적 의지를 의미한다. 일반적생각되는 예술의 창작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작가는 오감을 사용하여 대상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느낌과 감정을 끌어낸다. 이러한 고유한 감정이 신체와 도구를 사용하여 표현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작가는 창작과정의 수 많은 난관을 불굴의 의지로 해쳐나간다. 이와 같은 예술에 대한 통념에서 볼때 아무런 감정도 없고 그져 시키는 데로만 하는 인공지능을 예술의 주체로 인정할 수 있을까?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인공지능은 사진기와 같은 단순한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에 대한 예술적 가치에 대한 찬사는 누구의 것인가? 이 문제는 사진의 경우와 다르게 좀 복잡하다. 한 예술가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작품을 만들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예술가는 단지 무엇을 그리라고 명령만했을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가면서 예술적 가치를 창출해냈을 수도 있다. 마치 이세돌과 격돌할 때 알파고가 찾아낸 절묘한 수는 사람이 가르친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것처럼 말이다. 이때 작품에 대한 찬사는 소유자인 예술가의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한 엔지니어의 몫인가?

인공지능은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창조한 가치는 소유자인 예술가의 몫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을 개발한 엔지니어의 것인가?


'예술의 주체'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은 일단 접어 두고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 활동을 할 때 우선적으로 풀어야하는 숙제를  두 사람의 말에서 찾아보자. 조슨은 "흉내낸 모조품"이라고 말했다. 위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특정 작품을 모사한 것이 아니고 전에 없던 새로운 창조물이다. 근데 문제는 렘브란트의 회화 기법과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해 그렸다는 것이다. 어떤 솜씨 좋은 사람이 스승의 작품과 구별이 안 될정도로 정교하게 그림을 그렸다면, 이 사람을 예술가로 인정할 수 있을까? 예술가로 부를 수는 있지만 높게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 어거스티스의 말처럼 "인간의 영혼을 건드리는 작품"이 되어야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고 칭송받을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 역시 한 명의 사람이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을 통과할 수 있어야, 예술계의 일원으로 받아 들여지고 활용될 수 있다. 즉, 인공지능이 사람만큼 창조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지극히 주관적인 예술적 가치를 평가해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창조적일 수 있는가?


예술 창작이 가능할 정도로 창조적인 인공지능은 현재 기술 수준을 봤을 때 당분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도구로써 활용 영역은 점차 늘어날 것이고, 어쩌면 직접적인 창작보다는 도구로 활용될 때 인공지능의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인공지능의 가장 큰 특징은 어거스티스의 말처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미술은 음악 등 다른 예술 분야보다 훨씬 더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진 미술 활동을 데이터 기반으로 객관화하면 어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했을 때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넥스트 렘브란트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데이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여 인간애의 숭고함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로 칭송받고 있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잊혀졌던 그의 기법을 재현할 수 있게 됐고, 기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교육하는게 가능해졌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렘브란트의 걸작을 발굴하고 위작을 걸러낼 수 있는 수단을 얻게 됐다. 이외에도 기존에 불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을 도구로 활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미술계에 던지는 몇가지 질문을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를 통해 살펴봤다. 이것은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 미술의 변화 방향을 예상해 보기 위한 질문들의 작은 일부분일 것이다. 앞으로 연재할 글을 통해 가능한 많은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내 나름데로 찾은 답을 제시하겠지만, 많은 부분은 함께 찾아가야 할 것이다.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각자 나름데로의 생각이 정리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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