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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Jan 01. 2022

소설<알쏭당>

냄새

"지금 보시는 오토바이들 어마어마하죠~ 베트남의 명물입니다~자 여기서 퀴즈~! 호찌민시에 등록된 오토바이 수는 총 몇 대일까요?"

젊은 가이드는 창밖으로 파도같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물결에 정신을 쏟고 있는 관광객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킬 방도가 생각난 듯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 상품 있습니까? "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기명 팀장이 어린 시절의 개구쟁이로 돌아간 듯 손을 들며 재빠르게 물었다.

" 아~ 이 형 여기 와서 보험회사 다니는 거 티 내는 거야~ 뭐야~"

형원이 형이 팀장을 나무라듯 농담조로 말하자 앞 좌석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몇몇 관광객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약간은 당황한 듯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자신의 옷에 부착된 몇 개의 배지중 , 붉은색 테두리 안에 노란색 별 문양이 들어간, 베트남 국기 모양의 배지를 빼서 꺼내 들었다.

"백만~!!"

형원이 형이 가이드가 배지를 드는 순간 손을 흔들며 특유의 두성으로,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었음에도, 운전석 자리까지 한 번에 전달됐다.

"하하, 더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한참 더요~힌트를 드리자면 호찌민 시의 인구는 약 천만명입니다~"

천만명이란 숫자에, 조금 전 호찌민은 수도가 아니고 하노이가 수도라는 가이드의 말에 놀랐던 것보다, 버스 안의 한국사람들은 동시에 와,하고 짧은 탄성을 질렀다. 

"천만 대~!!"

장기명 팀장이 사람들의 탄성을 뚫고 안경이 들썩 거릴 정도로 신이 나서 소리 질렀다. 곰 같은 덩치가 의자에 갑자기 일어났다 앉으니 차가 들썩 거리듯 사람들도 서서히 분위기가 고조됐다.

"구백만 대~"

장성한 자식을 둔 것 같은 차분한 분위기의 중년부부가 둘이 사이좋게 외쳤다.

"팔백오십만~"

창가 자리에 여행을 혼자 온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자가 쓰고 있던 모자를 들어 흔들었다. 모자를 벗으니 맨들맨들한 민머리가 그래도 드러났다. 

"아버님~ 정답!입니다, 작년 통계로 정확하게 팔백오십만입니다, 하하 엄청나죠?"

흔들리는 버스에서 움직이는 것에 아직은 적응이 되지 않은 가이드가 휘청휘청 거리면 노년의 남자에게 배지를 건넸다. 

"어마어마하네요~그럼 뭐 갓난아기 애들 빼고는 한 대씩은 다 있는 거네~여기 완전 자동차보험 노다지인데~호호"

이번 팀 여행에 동행한 여자 선배 두 분 중, "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20년이 넘는 경력으로, 지점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 중에 한 명인 선배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으며 말했다. 선배의 말을 듣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확철이 끝났는지 농산물을 가득 넣은 비닐 꾸러미를 안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 오토바이 데이트가 익숙한지 앞자리의 남자 친구의 허리를 꼭 안고 가는 연인들, 오토바이보다 훨씬 큰 전자제품을 용케 오토바이에 묶고 앞만 보고 달리는 할머니, 각양각색의 헬멧들의 행렬과 열대지방의 뙤약볕에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같이 입은 그들의 긴소매 옷이 눈에 들어왔다. 

"사고 많이 날 것 같죠?"

부부, 젊은 연인, 그리고 친구들과 온 관광객들 중 유일하게 회사에서 온 우리 팀을 아까부터 예의 주시한 가이드는 뒷좌석의 우리에게 시선을 꼭 집어 질문을 던졌다.

"사고가 안 나면 이상한 거 아닌가요? 사고가 생각보다 없나요?"

가이드가 말의 어미를 살짝  올리는 본새를 보아하니 사고가 예상과 다르게 안 났다는 건데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가이드를 쳐다봤다.

"저도 첨에 와서 좀 의아했는데 생각보다 안 납니다. 물론 사고가 안 난다는 말은 아니고요"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 팀장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창문을 가리키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봐~ 그냥 막 인도 위를 올라가고 사람이랑 뒤죽박죽인데 저~"

가이드는 사람들의 놀라는 모습이 재밌는지 자신도 함께 창가에 다가가 오토바이의 행렬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 사람들은 사소하게 긁히거나 넘어지거나 하는 작은 사고는 그냥 일어나서 훌훌 털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가던 길을 갑니다. 한국이랑은 다르죠, 왜 작은 사고에도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보험사에 전화하잖아요"

그러니깐 조금 전 선배가 말한 자동차 보험의 노다지는 아닐 수도 있다는 말로 들렸다. 

"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순박하죠?"

방금 받은 배지를 모자에 달았는지 앞창이 번쩍이는 노년의 남자가 중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질문에서 아직 까지라는 말은 앞으로는 삭막해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암시를 알리는 간접화법 같았다.

"아직까지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예요~법규 이런 게 세서 저기 보이는 공안들이 힘이 있죠, 그런데 신기한 건 여기가 사회주의라는 건 평소엔 잘 못 느끼고 살아요~"

1986년, 베트남은 대외개방정책 도이모이(Doi Moi)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공산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적 경제발전을 위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해는 내가 새로운 신도시로 이사 온 해였고 86 아시안 게임으로 온 나라가 들썩 거렸던 해이기도 했다.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곳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 동남아지만 유럽의 분위기가 스며든 곳,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공기 속에서 이제 막 자본주의가 피어나는 새로운 품종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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