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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Aug 24. 2022

"나는 솔로"

역대급 9기, 관찰 예능에 관하여,

                                                                                                                                                                                                                                                                                            감히 말하자면, 가장 재밌는 예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재밌는 콘텐츠!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기수 9기는 역대급이었다. 어젯밤에도 이번 주 수요일에 방영했던 9기 최종 편을 보다가 박장대소를 여러 번 했고 어느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으니..

"나는 솔로"의 원조 격인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짝"을 즐겨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정된 공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직업과 나이, 재력을 오픈하고 마음껏 연애의 감정을 교류하라고 하는 취지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시청자의 관음증 욕구를 충족하려는 불편한 방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다를까, 출연진의 자살 사건으로 "짝"이라는 프로그램은 조용히 방송가에서 사라졌다. "나는 솔로"는 "짝"의 스핀 오프 격으로 포맷이나 과정이 매우 유사하다. "짝"을 유심히 보질 않아 잘 모르겠지만 출연진을 '몇 호'라고 명명한 것에서 영호, 순자, 옥순으로 가명으로 대체된 것 정도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오징어 게임"도 아니고 하하, 사람을 1호, 2호, 3호라고 부르는 순간 짝짓기 게임에 참여한 숫자 하나에 불과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각각의 이름의 출연진이 일관되게 쌓아놓은 어떤 이미지가 생겨났으니,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제작진은 사전 인터뷰 이후에 이름의 이미지에 맞는 이름을 의도적으로 부여하는 듯하다. 9기의 영호는 대놓고 성악을 불렀고 옥순은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으니.. 하하.


연애 관찰 예능을 보는 심리는 단순히 관음증과 대리만족으로 해석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짝"의 논란을 넘어 2021년 7월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 시즌 3라는 총 9기라는 무난히 방송가에 안착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코로나19" 때문이 아닐까 싶다.

히치콕의 영화 "이창"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제임스 스튜어트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웃들을 훔쳐보기 시작한 것은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의지 한 체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니 코로나의 장기화로 소개팅은 물론 사람이 여럿 운집하는 특정 공간에서 이성을 만나는 통로조차 막힌 상황, 아무래도 연애뿐만 아니라 사람의 만남이 그리워지는 그런 시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그러다 보니 초기 출연진들이 사전 인터뷰에서 주로 했던 말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사람들이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다"라는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더 심화되면서 출연진의 출연 요청과 

사람과의 만남이 줄어든 시청자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나는 솔로"라는 짝짓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이사를 하면서 TV를 과감히 없앴지만 지난 20년 동안 방송계의 큰 흐름을 굳이 정리해서 말하자면 집단 방송 체제의 토크쇼에서 백종원으로 대표되는 먹방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요리 관련 예능에서 최근 맹활약하는 오은영이라는 심리상담사로 대표되는 심리 관찰 예능이다. 이런 방송계의 흐름은 유행이 되면 너도 나도 포맷을 베껴 써서 티브이만 틀면 요리,먹방,트롯트, 오디션 프로그램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만하지만 항상 새로운 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창작자와 새로운 유행에 민감한 방송계의 특징 상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지점은 바로 방송계를 장악하는 직업의 변천사다. 수년 전, 한국의 내로라하는 웬만한 셰프들은 방송을 한 번쯤 나왔을 정도로 요리사들의 전성기가 있었는데 티브이만 틀면 앞치마를 두른 셰프들이 팬을 멋스럽게 돌리는 장면들이 자주 목격됐다. 개인적으로 스타 셰프, 요리사, 맛집 레스토랑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은 선진 문화의 초입이 시작되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먹고사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벗어나 맛과 분위기를 따지기 시작하고 정평이 난 셰프의 식당을 찾아가는 것은 먹는 행위가 일종의 문화가 되는 선진국 현상이다. 1970년대, 미국의 대도시 뉴욕과 시카고 등에서 중상류층을 상대로 스타 셰프가 탄생하고 그들의 인기와 명성을 바탕으로 레스토랑을 체인점 하기 시작한 시기는 미국이 유럽에게 남아있는 문화적 열등감을 극복하고 그만의 새로운 문화를 부흥시키던 시기였던 걸 감안하면 스타 셰프와 자본이 만나는 시점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예술적 창조 행위다. 그러므로 훌륭한 셰프가 공들여 만든 음식은 예술품인 것이다. 누구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 모든 과정이 섹스가 주는 쾌감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는 심리다. 오은영이 나오는 프로그램 중 "결혼 지옥"과 "금쪽 상담소"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솔직히 이런 상담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상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일 텐데 오은영은 명확한 솔루션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공감하면서 그들의 속내를 끄집어내고 다시 공감할 뿐이다. 맞다. 공감이다. 오은영은 공감할 뿐이다. 누구나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공감이 쉽다고 생각하면 매우 큰 오산이다. 공감하는 마음은 능력의 영역이다. 차원이 다르고 전문적이면서, 인간관계와 부부관계의 어느 정도의 통찰이 수반되지 않으면 공감은 상담의 매개가 되지 못하고 맞장구만 치다 상담자의 본질적인 심리적 문제에 도달하지 못한다. 

상담 심리 관찰 예능에서 시청자들은 상담자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게 된다. 앞서 말했지만 "차원이 다르다"라는 것은 심리 상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내담자는 상담자와 수평적인 관계에서 상담이 시작되지만 상담자는 어느 정도 다른 차원에 위치해서 상담자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심리 관찰 예능에서 다른 차원에서 상담 내용을 바라보는 사람은 시청자다. 시청자들은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문제를 관찰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안도의 감정이다. 잘나가는 스타들도 심리적 방어기제가 존재로 힘들구나, 누구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구나, 결혼 생활이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군.. "그것이 알고 싶다" 와 같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이나 공포영화를 찾아보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나는 아직 괜찮아, 잘 살고 있어"라는 심리적 안도감이다.


이번 "나는 솔로" 9기 편이 심리적 스릴러와 로맨스, 복수, 엇갈림, 무엇보다 무섭다는 여자들 간의 기싸움들 볼거리가 풍부했던 이유는 바로 광수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적 역설" 혹은 " 직업의 반대급부 이론"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름 인생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점은 의사가 환자들 챙기느라 자신의 건강을 못 챙기는 경우가 왕왕 있고 펀드매니져나 보험 설계사들이 실제로는 본인의 주식 수익률은 형편없고, 자신의 보험금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교사들의 자녀들이 학창 시절에 유독 삐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실제로는 소심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길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대중 앞에 서는 배우나 연예인을 꿈꾸고 성공한 보디빌더나 이종 격투기 선수들은 대부분 어릴 때 삐쩍 마른 멸치였거나 싸움을 못해서 얻어터지고 다니던 따돌림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아마도 자신의 심리적 문제나 정신적 상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공부하다 결국은 남까지 상담하는 경우가 대다수가 아닐까. (관상, 사주, 역학을 공부하는 시발점은 자신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9기의 내용은 광수가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정신적 문제와 싸우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작위적인 광수의 첫 등장은 지극히 내향적인 자신의 성향으로 인해 그동안 첫인상에서 실패했다는 경험에서 나온 행동이다. 광수는 이번 출연으로 자신의 그동안의 실패를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의 관계에서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의 억압이 부른 참사였다. 그것의 발단은 "정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옥순은 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선택을 한 것일까? 그리고 왜 현대인은 심리적 상처를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상담사를 찾아가 울면서 토로하는 것일까. 현대인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옥순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지적 능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순하고 솔직한 선택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길이 아니라 상대방인 광수가 주인공이 되는 선택을 안 이상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옥순은 자신이 이번 기수의 주인공으로서 인기를 좀 더 누리고 드라마틱 하게 광수를 선택해서 해피엔딩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옥순이 만났던 보통의 남성들처럼 그런 옥순에 애가 타고 더 표현을 하며 다가가는 그림이 아니라 광수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건드리는 사태가 되고 만 것이다. 광수는 보통의 남성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때부터 광수는 보란 듯이 삐뚤어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광수의 내적 전투가 시작된 거다.


그럼, 여기서 궁금한 점, 왜 이번 기수 여성 출연진들은 광수에게 호감을 느낀 것일까, 옥순과 영숙은 광수의 어떤 매력에 끌리게 된 것일까? 그가 의사여서?? 아니다. 광수와 대화가 통하는 것이다. 말이 쉼 없이 오고 간다는 것은 곧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고 심리가 오고 가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수는 정신과 전문의로 억압된 현대인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맞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섹스 못지않은 쾌락을 느끼기 시작했고 내 마음을 찰떡같이 파악해 주는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오르가슴 못지않은 해방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커리어가 견고하고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는 여성일수록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광수와 옥순과의 대화는 말 그대로 스파크가 터지는 머릿 싸움이 느껴진다. 주식투자를 즐기고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이 있는 옥순은 광수와의 대화가 흥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후반부 운동선수 출신의 영식의 우직한 진심에도 마음이 열리기는커녕 짜증을 내는 것이다. 옥순은 영식의 우람한 허벅지 보다 야리야리하고, 햇빛에 노출되면 금방 얼굴이 빨개지는 샌님의 두뇌에 섹시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수의 직업병으로 인해 결국은 본인의 심리적 상처를 꺼낸 이상, 광수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진 거다. 

옥순과 영숙이라는 고민의 선택지에서 광수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먹은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 날 카페에서 광수와 옥순과의 대화이다. 앞서 말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상담에서 중요한 건 바로 "다른 차원에서"이다. 광수는 줄곧 옥순과의 대화에서 상담자의 위치에서 말을 했고 초반 옥순이 개인적 아픔을 이야기했을 때 더욱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났을 거다. 하지만 카페에서 옥순이 광수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문제 삼으며 따지듯이 말하자 광수는 그제서야 " 자신의 문제"라고 실토한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깨지는 순간이다. 

이번 기수가 유독 재밌고 결말을 예측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광수가 제작진과 심리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진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억압에 따른 반응이 예민한 광수는 제작진의 사소한 질문조차 어떤 의도가 있고 자신의 본심에 해가 될 수 있다는 방어기제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보통은 선택 이전에 대략 커플을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데 비해 광수는 끝까지 자신의 본심을 함구한다. "징크스"를 이유로 제작진과 두 여성에게 끝까지 여지를 남기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한 것인데 분명한 것은 광수가 누차 말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제작진의 사소한 바람잡이 질문과 프로그램 방향에 행여 자신이 선택이 억압당하거나 왜곡당할 여지를 미리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광수의 여러 심리적인 문제를 통해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자질 평이나 개인적 인성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지만 그런 설왕설래를 떠나서 하나 분명한 것은 광수는 출연 목적 자체가 매우 진지했으며 자신의 선택에 정직하려 노력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심리상담 전문의라고 심리적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어서 그 직업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숙이라는 순애보 는 음.. 이 짧은 관찰예능에서 좀 놀랐다. 이번 9기의 재미의 8할은 광수라면 나머지는 영숙의 변천이다. 아, 사랑을 하면 사람이 저렇게 변하는 구나, 4박5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무슨 사랑의 감정이 생기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영숙이 보여준 순애보는 뭔가 농축적이다. 단 5일동안 사람의 얼굴이, 표정이, 발걸음이 단지 누굴 좋아한다는 이유로 저리 바뀔 수가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목격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혹자는 영숙은 겉으로는 착한 척 하는 진정한 여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광수는 엄마처럼, 넓은 바다처럼 자신을 보듬어주는 영숙을 선택했으니 광수의 불안한 심리를 진정 이해한 자는 바로 영숙이었다. 바로 그" 다른 차원" 에서 말이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TV를 집에서 없애고 나서도 유일하게 "나는 솔로"를 챙겨 보는 이유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라고 한 것 처럼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특히 이번 기수의 광수처럼 작정하고 제작진의 질문에 마음을 꽁꽁 숨긴다면 알 길은 더욱 요원하다. 덕분에 눈치빠른 나도 마지막 커플 결정까지 숨죽이고 지켜봤더랬다. 그리고 최근 몇편의 영화를 보고도 어떠한 감흥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예측하지 못한 반전, 복잡한 인간의 심리, 눈물 어린 순애보, 엇갈려서 웃긴 남여의 연애등 그 모든 것이 집약된 "나는 솔로 9기편" 이었다. 그래, 최고의 각본은 정말로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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