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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un 13. 2024

'기' 받으러 떠난 여행-세도나

세도나의 '볼텍스' 기운

몸과 정신이 바쁘고 지쳤던 5월을 무사히 지나고, 5월의 끝무렵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지난 4월과 5월을 버티게 해준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난 30대 내내 이어지는 지난한 워킹맘의 삶을 잦은 여행을 통해 버티고 있다. 이 기간 동안은 돈을 모으기 보다는 여행을 하며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데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직 후 첫 1년 동안은 휴가가 없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올해는 공휴일을 요긴하게 이용하며,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두세달 꼴에 한번씩 떠나는 여행은 일상을 즐겁게 살아가게 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한다. 늘 한국을 마음에 품고 사는 나지만,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에서 사는 이점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특히 LA에 살면 차량으로 1~2시간만 가도 여행할 곳이 천지다. 매번 여행 갈 곳이 끊이지 않으니, 여행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나에게는 LA에 사는 일이 즐겁다.


최근 '메모리얼 데이' 공휴일을 끼고 애리조나로 3박4일 여행을 다녀왔다. 애리조나는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차량을 타고 갈 경우에는 7~8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시간이 많았다면 로드트립을 가도 좋았겠지만, 고작 3박4일의 여행에서 왕복으로 총 15시간을 차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금요일 퇴근 후 버뱅크 공항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애리조나 피닉스를 향했다.


이번 여행지가 애리조나가 된 이유는 다 '세도나' 때문이다. 세도나는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로 '볼텍스' (Vortex)기운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볼텍스'란 일반적으로 회전하는 운동을 뜻하는 물기학적 개념이지만 세도나에서의 '볼텍스'란 특별한 영적 에너지가 집중된 장소를 일컫는다. 지구의 에너지가 강하게 나오는 지점으로, 예로부터 사람들은 볼텍스 장소에서 정신적, 정서적, 영적 치유와 성장을 촉진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매년 많은 여행객들이 세도나에서 명상을 하기 위해 방문하고, 일부 사람들은 세도나에서 영적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내가 세도나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동료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난 그곳에 들어서자 마자 '신'을 느꼈어!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이야.





그래서 나와 우리 가족은 세도나에서 특별한 '볼텍스' 기운을 느꼈나?


그건 아니다. 우리에겐 볼텍스 기운 보다 더 강한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남자아이를 동반한 여행은 언제나 수련회처럼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차분히 걸어다닐 줄을 모른다. 언제나 앞을 향해 질주하고, 서로 레이스를 하며, 잘 노는 와중에 중간중간 별일 아닌 것으로 싸운다. 말 그대로 둘이서 지지고 볶는다. 남편과 나는 두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시종일관 아이들을 단속해야 한다.

온통 정신이 육아에 쏠려 있다 보니 아쉽게도 '볼텍스'를 느끼진 못했다. 그래도 온통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바위들을 보며 평온한 감정이 들었다. 같은 미국이지만 내가 살고있는 LA와는 아주 다른 풍경에 마치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이질감을 경험했다. 우리는 유명 관광지를 전부 방문하겠다는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우리의 컨디션에 따라 그때그때 일정을 조율했다. 수영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과 호텔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수영 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로 나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달콤한 낮잠을 자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마음이 가는대로 하루를 보내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어차피 평소에 늘 짜여진 일상대로 살아가는데, 여행까지 와서 계획을 세우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틈틈이 관광지도 방문하긴 했다. 바위에 매달린 형태로 세도나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홀리 크로스 채플'에 가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며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고(참고로 난 무교다) '벨락' 트레일에서 아이들과 하이킹도 했다. '트라케파케 쇼핑빌리지'에 들려 라이브 뮤직을 감상하고, 저녁도 먹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다는 '블루 맥도날드'에서 해피밀도 먹었고, 세도나에 가면 꼭 해봐야 한다는 '핑크 집투어'도 했다. 무계획 여행 속에 나름 할 것은 다 한 셈이다.



무계획 속에서 평온함을 느끼며 좋은 기운을 잔뜩 받고 왔던 세도나 여행. 다음번에 다시 가면 세도나에서 요가를 하며 명상의 시간을 꼭 가져보고 싶다. 그때는 나도 어떤 영적 체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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