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후 미용실에 가는 날이 다가오면 유독 설레는 마음이 찾아왔다. 비로소 두 아이로부터 벗어나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붕 떠오르기에는 충분했다. 미용실 원장님과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마시고, 가져온 책을 읽는, 말하자면 2시간이 채 안되는 그 시간은 지극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언제부턴가 침범당했는데, 바로 두 아들 녀석이 나를 따라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아빠가 다니는 미용실에 가라 해도 아이들은 굳이 엄마가 다니는 미용실에 따라오겠단다. 고로 한 두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서 보내는 나만의 힐링타임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져버렸다.
얼마전 주말에도 날 따라 나선 두 아들 녀석과 함께 단골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다. 둘째까지 출산을 한 후로는 흰 머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지 않고서는 깔끔한 머리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흰머리는 새치 수준을 넘어서서 말 그대로 흰머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조금만 방치해도 만나는 사람마다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흰머리가 곳곳에서 새싹처럼 자라났다. 흰머리가 빨리 나는 건 외할머니와 엄마로부터 내려온 집안 유전이기는 하지만 내 경우는 흰머리가 난 시기가 엄마(40대 초반부터 흰 머리가 났다고 한다)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출산-육아-직장 스트레스 콤보가 아무래도 흰머리에 치명적이지 않았을까 원인을 유추해본다.
내가 염색을 하는 동안 두 아들은 이발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머리를 깎기 위해 의자에 앉은 둘째 아들이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빨간색 브릿지 넣어주기로 했잖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같은 반 여자친구가 빨간 브릿지를 넣은 걸 보고 부럽다 말하는 둘째에게 너도 언제 미용실에 가서 해줄게!라는 말을 하긴 했었다. 그걸 기억했다가 미용실에 오자 염색 의사를 내비치는 아들. 빨간색이라...그건 살면서 단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염색 컬러다.
원장님은 빨간색은 염색으로 나올 수 있는 색이 아니라고, 탈색을 해야 한다고 했다. 탈색은 나 조차도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인데 5살 난 아들에게 탈색이 웬말인가. 원장님이 탈색을 할 때 약이 두피에는 닿지 않으니 어쩌면 염색보다도 아이에게 괜찮을 수 있다고 옆에서 조언해주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아들의 탈색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첫째도 옆에서 끼어들었다.
엄마, 나도 파란색 브릿지 할래요.
하하, 우리 아이들은 브릿지 넣는게 무슨 물감을 칠하듯 미술놀이인줄 아는게 틀림없다. 멋부리는 아들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을 머리카락에 입혀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나이가 되었다니, 새삼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내 어린시절도 떠올랐다. 5학년쯤에 나도 엄마 따라 동네 상가 미용실에 갔다가 노란색으로 브릿지를 넣었던 기억.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들여다 보며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두 아들의 모습은 그때의 나와 꼭 닮아 있었다.
두시간 동안이나 미용실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꾹 참아낸 아이들은 완성된 머리 스타일을 보고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 후 일주일 동안은 얼마나 자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수시로 체크하던지 어처구니가 없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둘째 아들은 학교에서 자신이 유명해졌다고, 어떤 친구는 자신을 DJ라고 불렀다며 자랑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첫째 아들은 딱 세 가닥만 파란색 브릿지를 넣었는데, 다음번에는 다섯가닥 정도는 파란색 브릿지를 넣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딱 몇몇 친구들만 자신의 파란색 머리를 알아봐줬는데, 내심 다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머리 스타일 변화를 알아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인간에게는 집단에서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본능일까? 아니면 나의 두 아들은 관종인걸까? 적어도 엄마인 내게 아이들이 멋을 부리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느낌이랄까. 앞으로도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고, 그것을 해달라고 내게 요구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시켜서 만들어진게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계가 몹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