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여름은 길다. 한국에서는 한여름의 폭염이 끝나고, 가을이 온다는 소식이 여기 저기서 들려올 무렵까지도 LA에서는 햇볕이 쨍쨍이다. 그러다 11월쯤이 되면 추위가 서서히 찾아온다. 특히 11월 첫째주 일요일을 기준으로 썸머타임이 종료되고 나면 오후 5시만 되어도 거리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LA에도 긴 여름이 끝나고 겨울에 접어들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겨울이 찾아왔으니 그 설레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 출퇴근길 차에 탈 때면 캐롤을 듣기 시작한다. 캐롤을 듣자마자 예외없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겨울이 온 것이다. 한 해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건강히 살아 숨쉬며 캐롤을 듣고 있다. 그 단순명료한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오면서 세월의 흐름, 나이 듦을 인지하고, 현재의 삶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전 친구를 만나 벌써부터 캐롤을 듣고 있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친구는 "나도 이미 듣고 있지!"하고 응수했다. 그렇다. 11월부터 캐롤을 듣는 건 비단 나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일찍부터 캐롤을 들으며 다가올 겨울을 선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백화점, 마트를 가봐도 할로윈이 끝나기도 전부터 크리스마스 데코가 한창이다.
캐롤과 함께 겨울 느낌을 쏘아올리는 데는 스타벅스 음료만한게 없다. 스타벅스는 매년 겨울 카라멜 브륄레 라테와 같은 겨울철 한정 음료를 선보이는가 하면, 홀리데이 일회용컵에 커피를 담아준다. 스타벅스는 지난 1997년부터 홀리데이컵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무려 27년 동안이나. 홀리데이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면 그냥 이유없이 행복한 감정이 든다. 스타벅스의 상술에 놀아나고 있다는게 살짝 분하긴 하지만, 뭐 어떤가. 매년 겨울 내 행복의 일부분을 차지해주는 스타벅스에게 고마움이 더 크다.
오늘 아침에는 홀리데이컵이 나왔을까,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사무실을 향하는 길에 스타벅스를 들렸다. 일반 흰색 컵에 담긴 주문 음료를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 아직인가? 사무실에 와서 홀리데이컵 릴리즈 데이트를 검색한 결과 11월7일부터였다. 이틀만 더 기다리면 드디어 기다리던 시즌이 다가오고야만 것이다. 이틀 후부터 출근길에 카라멜 브륄레 라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올랐다.
11월7일. 집에서 커피를 내려주려는 남편의 친절함을 한사코 거절하고 스타벅스를 들렸다. 나처럼 홀리데이 시즌 음료, 컵 등을 기다리는 고객들로 아침 스타벅스 풍경은 그 어느때보다도 붐볐다.
캐롤 음악과 홀리데이컵에 담긴 커피. 달달한 커피 한 모금.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11월 아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