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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15. 2024

다시 하와이

11개월만에 다시 하와이에 왔다. 거의 1년만인 셈인데,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와이키키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도착 다음날 새벽부터 조깅을 다녀온 남편은 “마치 우리 동네에서 달리는 기분이야”라고 했는데, 나도 정확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건 흡사 우리 동네에 온 것 같잖아?


지난해 12월, 이곳에서 고작 열흘 남짓 머물렀을 뿐인데도 희한하리만큼 이곳이 익숙하게 여겨지는 건 아무래도 이곳에서 우리 가족의 동선 폭이 좁기 때문일 것이다. 가는 곳이라 해봐야 호텔 앞 바다, 메인거리 상점, 식당 뿐이니 익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 가족 모두 그 한정된 공간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워낙 편안하고 좋았던 터라 두번째 하와이 방문에서도 활동의 폭을 넓힐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지난 번 머물렀던 호텔에서 고작 몇 블럭 떨어진 호텔을 예약했다. 남편은 지난번 호텔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이번에도 같은 곳으로 가자했지만, 어느 정도의 새로움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같은 숙소를 예약하긴 싫었다. 그래서 그 합의점이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이 호텔이다. 모아나 서프라이더.


하와이 오아후 섬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호텔은 외관부터 고급스러움을 풍기는가 하면 메인거리 중심에 위치해 있어 그 어디를 가든 가깝게 여겨진다는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호텔 1층에는 ‘호노룰루 커피’ 카페가 있고, 길 건너편에는 ABC 스토어, International Market Place 쇼핑몰이 있다. 한 블럭 걸어가면 ‘로얄 하와이안 센터’까지 있으니, 실로 이곳에서는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걸어갈 수 있다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호텔 앞에는 해변이 바로 펼쳐져 있어 시도때도 없이 바다에 나가기 편하다.


입지가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은 우리 가족 모두 빠짐없이 누렸다. 우리집 남자 셋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와이에서 보내는 80% 이상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냈다고 해도 무방하다. 남자 셋이 바다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고 있으면 나는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찾길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International Market Place에는 없는게 없었다. 먼저 일본인 오너가 운영하는 깨끗한 마사지 샵에 들려 마사지를 받으며 뭉쳤던 몸을 풀었다. 부드러운 손길에 속세에 찌들었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착각이 일었다. 마사지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흘러가는지, 눈 감고 일어나니 마사지가 끝나버렸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Kona 카페에 들려 아이스 라떼와 퀸즈마망 빵을 먹은 후, 길거리 상점을 배회하다 보면 3시간은 거뜬하게 흘러가 있었다. 이대로라면 하루 종일 혼자 놀아도 전혀 심심하지 않을 듯한데, 아쉽게도 내게 주어진 자유는 3시간 안팎. 물놀이로 인해 배가 굶주려 있을 남편과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몰 안에 있는 푸드코트에 들려 피자 한 판을 포장해 해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와이키키 해변으로 가니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바로 눈에 띄었다. 남편은 술을 홀짝이며 비치 의자에 앉아 바다멍을 때리고 있었다. 나도 의자에 앉아 ABC 스토어에서 사온 캔 와인을 땄다. 바다를 바라보며 피자와 술의 조합이라니,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남편이 바다로 다시 뛰어나간 후로는 가져온 책도 읽고, 에어팟을 낀 채로 음악을 듣는 호사도 누렸다. 이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시 하와이에 온 것이다. 1년 동안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지금의 나는 온전한가?라고 묻는다면,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행복하지도 않다. 적당한 불행과 행복이 공존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30대 중반, 여전히 길을 잃은 아이같아질 때가 있다. 이쯤되면 삶에 대해 뭘 좀 안다고 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웬걸. 삶은 그리 호락하지 않았다. 10대, 20대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디로 나아가야할지를 고민하는 30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런 고민은 살아있는한 평생동안 지속될 것이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며, 내게 고민과 불안이 없던 시기가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10년간의 기록이 담긴 일기장을 뒤적이며 내린 결론은 '고민과 불안이 부재했던 시기는 없다'이다. 늘 그 시기에 맞는 고민과 불안감이 있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만 봐도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감정이 존재하고, 그 다양한 감정 모두를 수용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모순적이지만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가, 가끔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이 꽃밭으로만 보이는 순간도 있음을 주기적으로 느끼는 게 삶의 만족감을 높이는데 중요한 것 같다. 하와이 여행은 내게 그런 순간들을 선물해줬다.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다는게 감사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그저 모든게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 귀한 순간을 내 마음 속 서랍에 잘 보관해 놓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꺼내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를테면 미래의 나를 위한 보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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