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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 편해졌다

by Iris Seok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니 육아가 편해졌다.


브런치 글 제목을 쓰고 잠시 멈칫했다. ‘육아’와 ‘편하다’는 단어가 어찌 한 문장 안에 들어갈 수 있나 싶어서. 내게 육아는 언제나 고된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 곳으로 재껴두고, 내가 가진 모든 물리적 노동력을 쏟아 붙는게 내가 정의하는 육아였다. 육아에 있어서는 자꾸만 엄살이 심한 사람이 됐다. 공부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이만큼 엄살을 부리진 않았다. 엄마가 된 후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 많았다. 어째서 난 이토록 엄마의 삶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가? 모성애의 부족인가?


육아에 있어서만큼 불평, 불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육아를 하는 일이 내게는 마치 꿈과 멀어지는 길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육아와 꿈을 저울 위에 올려두면 육아가 백전백승 이겼다. 성취감을 인생의 주된 행복으로 설정해둔 나라는 사람에게 육아는 성취감을 앗아가는 일이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가끔 엄마들 중에 육아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몸은 힘들어도 아이를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난 왜 저런 고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건지 답답함만 커졌다. 커리어에 욕심이 있다는건 엄마로서의 삶을 잘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제나 장애물이 됐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건 왜 이렇게 힘든걸까. 애당초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걸까?




다행히 시간은 어찌저찌 흘렀다. 싫으나 좋으나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갔다. 지난한 육아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나의 두 아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두 아이 모두 유치원이 아닌 정규교육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학교에 다닌 후로는 엄마가 신경써야 할 영역은 넓어졌다.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는 오후 2시30분이면 끝이 났고, 이후의 시간은 부모의 몫이다. 애프터스쿨, 학원 등으로 학교 이후의 시간을 바지런히 짜야했다. 회사에 매여있는 몸이므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짜는게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별다른 선택지 없이 애프터스쿨에 갔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 혹은 아빠 손을 잡고 집에 가는 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애프터스쿨 선생님의 부름을 기다리는 두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저릿해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보다 강하고, 처해진 환경에 적응하는 법이다. 언제나 그랬다. 애프터스쿨에 가면서 얻게 되는 것도 많았다. 애프터스쿨에서 만난 다른 반 친구, 학년이 높은 형, 누나들과도 서슴없이 어울리는 아이로 성장했다. 애프터스쿨에서 학교 숙제를 다 끝내고 왔기 때문에 집에 온 이후에는 숙제 걱정 없이 놀 수 있었다. 애프터스쿨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덕분에 학문적으로 배우는 범위가 풍성했다. 역시 뭐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당연히 내가 집에 있는 엄마였다면 두 아이를 애프터스쿨에 굳이 보내지는 않았겠지만, 내 성향은 집에 있을 수 있는 엄마가 아니였고,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두 아이는 좋으나 싫으나 애프터스쿨에 가야하는 운명인 것이다.


부모도 아이들도 현재의 상황에 적응했다. 각자 회사, 학교에서 온 종일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만난다. 집으로 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복사, 붙여넣기 하다보면 주말이 오고, 주말에는 다함께 외식을 하며 가족시간을 가진다. 아이들이 이만큼 크니 육아가 힘들기 보단 육아를 통해 얻는 기쁨과 보람이 과거에 비해 더 컸고, 이정도면 육아와 일을 양립하는게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물론 여전히 일과 육아 사이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팽팽하다. 어느 한쪽에만 올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 어디에서도 결과를 최대치로 끌어낼 수 없다. 이럴 때는 장기전을 택해야 한다. 당장은 뭐하나 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것같지만, 먼 훗날 언젠가는 자식들도 멋지게 성장할테고 나도 모르는 사이 일로도 성장해있으리라는 믿음.


요즘은 따로 재워주지 않아도 두 아들은 잘 시간이 되면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아, 이 얼마나 큰 발전인가! 더이상 어디가서 육아가 어렵다고 찡찡돼서는 안된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준 두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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