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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 10년 만에 자유

by Iris Seok


1시간 뒤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나는 현재 LA 공항이고,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창가에 앉아 있다. 이게 정녕 현실이 맞는지 인식의 부조화가 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무려 10년 만에 얻어낸 자유다. 남편도, 아이들도 없이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라. 와, 이게 내 인생에서 정녕 가능한 범주의 일이었던가. 맥주를 홀짝이며 두고온 가족 생각에 살짝은 불안했지만 그보다는 설레는 마음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시간의 시작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빠의 칠순을 앞두고 가족 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던 차에 엄마가 ‘남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오, 남프랑스? 나도 거기 정말 가고 싶었는데! 라며 맞장구 쳤고, 아빠는 엄마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아빠 칠순에 꿈에 그리던 남프랑스 여행을 가다니 말만 들어도 낭만이 넘쳤다.


남편에게 프랑스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자, 내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우려섞인 표정을 지었다.


“두 아이들과 함께 가는 유럽 여행이 과연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효도 여행이 될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유럽여행은 필연적으로 많이 걸어야만 한다. 하루 1, 2만보는 우습게 걷게 된다. 아직 8살, 6살인 두 아들이 유럽여행에 간다면 분명 무리스러울게 뻔했다. 게다가 두 아이는 박물관이든, 맛집이든 그 어떤 것에도 큰 관심이 없을 터였다. 아직까지 어린 두 아이가 원하는 건 장소 불문 언제나 ‘놀이터’에 머물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갈 때면 늘 인근 놀이터에 들려 1시간씩은 두 아이가 뛰어놀게 해줬다. 유럽여행까지 가서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두 아이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부모님을 보살펴드리긴 불가할 게 뻔했다. 그래서 남편은 부모님의 수월한 여행을 위해 자신과 두 아이는 미국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남편은 유럽여행 이후 한국에서 조인하겠다고,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자고 했다.


그으래…?


남편의 제안에 차마 ‘안된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워낙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고, 또 그의 주장이 그럴 듯했다. 더욱이 아이들 없는 유럽여행이야 말로 어쩌면 내가 가장 오래도록 꿈꿔오던 시간이 아니었나.




10년 전, 결혼 후 4개월만에 아이가 덜컥 생겼다. 전혀 계획하지 않은 아이였다. 당시 내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대학원생이었고, 아직 사회에는 한 발자국도 내밀어 보지 못한 상태였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났지만 그 중에 엄마로서의 역할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나로서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됐다. 엄마가 되고 나니 포기해야할 일들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소중한 아이를 얻은 댓가였지만, 문제는 내 정신이 지속적으로 청춘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는데 있었다. 엄마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어떤 일들을 꿈꾸고,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마음 속에 열망과 갈망이 넘쳤고, 그럴 수록 엄마가 된 후의 내 삶이 조금은 초라하고 무겁게만 여겨졌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야했기에 미숙했고, 불만이 가득했다.


특히 유럽여행이 그렇게나 가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파리, 그곳은 꿈의 여행지처럼 여겨졌는데, 대체 언제쯤 갈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갈망했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되어 자유가 사라질줄 알았다면 20대에 갔다오는 거였는데, 왜 그 시절에는 영화 ‘테이큰’에 꽂혀 유럽 여행을 무섭게만 여겼는지 아쉽기만 했다. 파리와 관련한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며 지난 10년간 그렇게 가보지도 않은 파리를 그리워했다.



파리에 이어 남프랑스를 향한 로망도 해를 거듭할 수록 무럭무럭 커졌다.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남프랑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이 넘치는 곳인 것만 같았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랄까. 오래도록 꿈꾼 결과 올해 남편의 배려 덕분에 꿈이 이뤄졌다. 부모님과 남동생-딱 나의 원가족들 하고만 떠나는 유럽여행. 아이를 낳은 이후 꿈 조차 꿔보지 못했던 여행이 실현되고야 마는 것이다.



미국에 두고 가야 하는 남편과 두 아이 생각에 마음은 조금 무거웠지만, 그보다 내게 주어질 자유시간에 자꾸만 벅차올랐다.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어서, 매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알차게 보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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