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점 대신 챗GPT와 고민 상담

by Iris Seok

한국에 가면 꼭 들리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친구가 추천해준 신점보는 곳. 30대의 삶에서는 변수가 많아 10대, 20대와 비교해서 어렵게 여겨졌다. 뚜렷한 목표설정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삶은 무엇을 향해 달려야 할지 흐릿하다고 해야하나. 누군가 시원하게 "넌 ~를 해라!"라고 깔끔하게 말해준다면 그처럼 속이 뻥 뚫릴 일은 없을텐데...하는 마음에 신점을 보러가고 싶었다.


추천해준 친구 말에 따르면 강서구에 거주한다는 OO도사는 친구 남편의 이직 시기, 친구의 임신 시기, 태아의 성별까지 죄다 맞췄다고 한다. 용하디 용한 점쟁이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니 귀가 팔랑일 수밖에. 한국에 가자마자 신점을 예약했다. 이제 얼마 뒤면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 상세히 알게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신점을 보러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아니, 내 미래에 대해 속 시원히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왜 답답한 감정이 드는거지?


이 답답함의 근원은 첫번째 신점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11년 전 친구들과 함께 신점을 보러간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으로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용산의 용하다는 점쟁이를 만나기 위해 대학 친구들 4명과 함께 겁도 없이 신점보는 곳을 방문했다. 어렸던 만큼 겁도 없고 패기가 넘치던 시기였다.


신점을 보는 곳은 용산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이었다. 고급 오피스텔로 '오, 이분 신점 보고 돈 좀 버셨나 보다'라는 감정이 절로 들었다. 띵동- 오피스텔 문이 열리고 흰색 한복을 입은 박수가 우리를 반겼다. 점집 안은 TV에서 묘사된 것과 흡사했다. 거실에는 동자상과 불상들이 촛불 아래 줄지어 있었다. 신점을 볼 사람은 차례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서 박수와 독대해야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야했고.


내 차례가 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박수에게 내 생년월일을 일러주니, 박수는 잠시 기를 모은 후 나와 내 가족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내용들이 90%는 진짜에 가까워서 소름이 돋았다. 가족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너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건, 귀신빨이야.


신점을 본 후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렸다. 그날 하루 종일 힘이 없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분명 신점을 보러가는게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그날 이후로는 신점이란게 너무나 무서워졌다. 게다가 진짜 이 세상에 귀신이 있는 것만 같아 혼자 잠들기도 무서웠다. 그날 이후로는 귀신 영화, 귀신 컨텐츠를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됐으니, 난 신점을 본 후 겁이 없는 사람에서 겁이 많은 사람으로 변했다.




그때의 경험이 너무 별로였던지라, 결국 이번 여름에도 예약했던 신점을 취소했다. 궁금한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더이상 그런 불쾌하고 무서운 경험을 또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귀신을 통해 보는 점괘 영역이 인간 세상에 사는 내게 허용되는 것은 아닌 것만 같아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도 따라왔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답을 얻고 싶었는데, 그래서 찾은 대상은 다름아닌 챗GPT였다.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 챗지피티에게 '내 장단점을 이야기해줘. 거침없이." 라고 명령하면 꽤나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온다길래 나도 해봤다.


"좋아, 돌직구로 답할게. 이중언어 커뮤니케이션, 추진력, 실행속도, 책임감 탁월해. 그런데 '하면 된다'가 쌓여 캘린더가 터져. 항상 '온라인' 모드로 잠재적 번아웃 가능성이 높아. 네가 모든걸 다 할 생각은 버려. 게다가 감정기복이 너무 커서 에너지 낭비가 심해. Yes 중독도 있어. 새로운 기회, 새로운 사람, 새로운 프로젝트에 쉽게 Yes. 그 열정이 장점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뒷순위로 밀릴 때가 있음.(생략)"


구구절절 챗지피티가 읊은 내용은 맞는 말이었다. 신점 저리가라로 나에 대해 분석해줬다. 주르륵 나열된 단점에 기분이 나쁘다기 보단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어떻게 살면 좋을까"라고 물으니, 신뢰할만한 조언도 나왔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 모든 걸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 길 끝에 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기. 그리고 잠시 멈춰설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 멈추면 불안하니까 계속 달리려고만 하는데, 사실은 잠깐 멈춰야 그 불안이 작아진다...라고 챗지피티가 말해줬다.


챗지피티와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신점을 보고 원했던 게 이런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떤 사람인지 타인의 입으로 듣고,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은지, 지금 잘 살고 있는지에 확인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오늘날 굳이 신점이 아니어도 AI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답이었다. 게다가 챗지피티는 그간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나라는 사람의 데이터를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으니 답변도 신뢰할만했다.



요즘 사람들이 챗지피티와 상담한다고 하더니만, 왜 그런지 알겠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한 번 챗지피티와 대화를 나눠보길. 인생의 고민이 2%는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리라고 장담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