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단수 조치
지난 화요일(6일) 아침, 아무 생각없이 일어나자 마자 입을 헹구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었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뿔싸... 그제야 어제 LA수도국에서 메세지로 보내온 한밤의 공지문이 떠올랐다. 단수 조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전날 늦게까지 지역 행사에 참가해 일을 했던 터라 별생각 없이 넘긴게 문제였다. 곧 단수 조치가 내려질테니, 지역 주민들은 욕조에 물을 받아놓으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사무실에 출근해 알아보니 LA의 밸리지역인 포터랜치와 그라나다 힐스에 단수 조치가 내려졌다. 최소 3일 동안은 밸브 수리를 해야해서 물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수도국에 따르면 펌프 스테이션 수리 중 주요 조절 밸브가 고장이 났고,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물 공급이 완전히 차단됐다. 문제는 이 밸브가 지하 20피트 깊이에, 가스관 및 광섬유 등이 빽빽하게 깔린 구역에 있어 수리 시간이 상당히 길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물이 끊기자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설거지와 빨래는 쌓여가고, 샤워는 불가능했고, 변기물 조차 내릴 수 없었다. 이중 가장 불편했던 건 변기물을 내릴 수 없다는 것... 물이 끊긴 첫날,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싶었더니, 아이들의 소변과 대변 등을 그대로 고여 있어서였다. 윽. 코를 틀어막고 변기 뚜껑을 열어 먹는 생수를 들이 부었다.
콸콸콸 쏟아지는 생수. 1.5L 생수통을 통째로 넣은 후에야 변기물을 내릴 수 있었다. 세상에나. 평소에도 변기물을 내릴 때마다 이렇게나 많은 물이 사용됐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지구의 환경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지구는 인간들이 매일 쓰는 무한대의 물을 어디서, 어떻게 충당하고 있는 것일까? 하,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수도국은 동네에 임시 물 배급소를 열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0.5L 생수가 24개 담긴 생수팩을 차량 한 대 당 3개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생수팩을 받는다한들, 식수를 부어가며 샤워를 할 수는 없었다. 날씨는 30도가 넘는 폭염이었고, 썸머 캠프에 다녀온 아이들은 매일 땀범벅이 되어 나타났다.
하여 물이 끊긴 첫날은 울며 겨자먹기로 동네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했다. 그날 오전 11시에 호텔을 예약한 게 신의 한수였다. 오후 2시가 넘어가자 호텔은 만실이었다. 물이 필요한 모든 동네사람들이 너도 나도 호텔을 예약한 것이다. 아무래도 집에서 짐을 부랴부랴 싸서 먼 호텔에 가기는 불편하니까, 가장 가까운 동네 호텔 선호도가 높았다.
우리가족만 해도 그랬다. 평소대로 아이들 방과 후 수업까지 전 일정을 다 마친 후에 밤 9시가 돼서야 호텔에 체크인 해서 들어갔다. 호텔에 묵는 이유는 단 하나. 씻고 싶고, 화장실을 마음껏 쓰고 싶어서. 단수가 되어 보면 안다. 화장실의 모든 기능이 일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설거지와 빨래 정도는 미뤄도 된다. 외식을 하면 되고, 빨래방을 이용하면 되니까. 그런데 화장실은 대체불가의 영역이다. 신체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여름철 용변을 보고, 샤워를 하는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꼭 지켜져야 하지 않나...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살 것 같았다. 단수 조치가 시행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물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남편과 나는 내일 평소대로 출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썸머캠프에 가야하는데도 호텔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잠이 들자니 마치 여행에 온 듯한 기분? 이걸 좋아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다음날부터는 더이상 호텔을 예약할 수 없었다.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집 앞 호텔을 예약한다는 게 경제적으로 너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크 아웃 하기 전에 한 번 더 샤워를 했다. 이제 샤워를 하면 당분간 못할테니까... 남편은 회사에 가서 샤워를 했다. (다행히도 남편 회사에는 샤워 시설이 있다)
낮 시간은 단수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회사에, 아이들은 학교에 있었으니. 문제는 밤이었다. 우리는 이날 하루 일정을 다 마친 후 저녁 외식을 했고, 집으로 돌아와서 공급받은 생수로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았다. 뭔가 되게 원시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게 정글의 법칙이 아니면 뭐람...그렇기에는 집은 쾌적하니, 전기가 나가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그 다음날은 물이 찔끔 나왔다. 찔끔 나오는 물로 겨우 샤워를 했다. 사실 수도국에서는 수리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물 사용을 최대한 줄여달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샤워를 안하고 폭염 날씨를 버틸 순 없었기에 죄책감을 느끼며 아주 빠르게 샤워를 했다.
설거지는 여전히 불가했기 때문에 무조건 나가서 외식을 해야했다. 생수가 부족할까 불안해서 또다시 물 배급소에 가서 물을 받아왔다. 남자인 아이들과 남편은 빈 생수통에 소변을 보고, 대변은 무조건 식당 또는 회사, 학교 등에서 해결하고 왔다. 내 경우에는 식수로 변기통에 물을 채워 생리현상을 해결했다. 쓰다보니 뭔가 현타가 온다. 대체 내가 뭘 쓰고 있는 것인지...
11일. 단수 조치가 내려진 지 6일째(8/5~8/11). 수도꼭지를 틀면 물은 나왔는데 수도국은 이 물이 아직 깨끗하지 않다고 판단, 주민들에게 끓인 물을 먹어야 한다고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수압이 낮아서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어서 물의 청결도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집에서 요리를 해서 집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설거지가 문제였다. 설거지를 일반 물로 끝낸 후 식수를 이용해 헹궜다. 여전히 세수, 양치 등은 식수를 통해 해결했다. 식수가 금세 바닥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어찌 저찌 일주일이 지났고, 오늘에서야 수도국으로부터 모든 게 정상으로 되돌아왔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오마이갓. 어찌나 감사한지. 이제부터 죄책감없이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도 할 수 있다!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기쁘다 기뻐.
큰 배움을 얻었다. 물은 소중하다. 그러니 있을 때 아껴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