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친구들의 둘째 소식이 부쩍 들려온다. 이미 첫째 아이를 둔 친구들은 둘째 아이의 성별이 무조건 첫째와 같기를 바랐다. 특히 첫째가 딸일 경우 그 경향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자매가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기에 딸-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다.
딸, 아들의 조합일 경우 부모입장에서는 두 성별의 다름을 통한 행복감을 얻을 수 있지만, 자식 입장만 보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단게 친구들의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친한 남매는 본 적이 없다면서, 결국 같은 성별이 자식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거라고 그랬다.
뭐, 자매가 최고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나도 살면서 엄청나게 '언니'가 가지고 싶었다. 특히 예민한 10대 시절에 더욱 그랬다. 친구들 중 언니가 있는 친구가 그렇게나 부러웠다. 언니를 가진 친구들은 삶의 모든 희노애락을 언니와 공유하며 두터운 의리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남동생과 매일 몸으로 치고 박으며, 꽤나 터프한 시절을 보냈다. 이 쓸모도 없는, 내 애만 썩이는 남동생이 짜증났다.
사실 남동생과 사이가 멀어진 것 중학생 때부터였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남동생과 엄청 친하게 지냈다. 우린 매일같이 만화책을 빌려봤다. 괴짜가족, 이토준지, 도라에몽, 미스터초밥왕...그 시절 남동생과 즐겨봤던 만화책들. 함께 침대와 누워 낄낄대며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 방 3개짜리 집에서 부모님, 할머니가 각각 방을 쓰고, 나와 남동생은 함께 방을 썼다. 그 시절만 해도 남자, 여자로서의 개념은 전혀 없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린 밤마다 함께 낄낄 거리느라 잠들지 못했다. 그 시절 함께 즐겼던 만화책, 드라마, 디즈니 만화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중학생이 되고 방4개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남동생과 방을 따로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동생과 멀어졌던 것 같다. 우린 점차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더이상 우린 같이 놀지 않았고, 친구들이 인생에서 가장 일순위가 됐다. 사춘기와 동시에 우리는 남남이 됐다.
남동생과 다시 두터운 의리를 쌓아가기 시작한 건 유학생활을 함께 한 이후부터였다. 타지에서 둘이 함께 살면서 지지고 볶는 일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털어놓을 수 있고, 위로를 얻을 수 있는건 당연 남동생이었다.
같은 취향, 같은 성격을 가진 남동생과는 사이가 안 좋을 땐 최악이었지만 둘 다 기분이 좋아 쿵짝이 잘 맞을 때는 베스트프렌드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가족이기에 필터링 없는 대화가 가능했고, 자유로운 대화를 주고받으면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곤 했다. 어느날 남동생은 썸녀와의 데이트를 마다하고, 누나와 브런치를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해서 썸녀와 쫑나기도 했으니 과연 '시스터 보이'라고 불릴만도 했다.
결혼 후에도 남동생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남동생과 남편이 친형제만큼, 어쩜 그 이상으로 돈독한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LA에서 남편을 만났고, 남편과 6개월쯤 사귀었을 무렵 남동생을 소개시켜줬다. 내가 언니가 가지고싶었던 것처럼 남동생도 형을 몹시 가지고 싶었으므로, 남동생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내 남편에게 만나자마자 대뜸 '매형'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었다. 나와 내 남동생이 똑같은 성격을 가졌기 때문일까. 어쩐지 남편과 남동생은 쿵짝이 잘 맞았고, 지금까지도 친형제처럼 잘 지내고 있다.
얼마전 긴 추석 연휴를 맞아 남동생이 LA로 놀러왔다. 2주간 우리집에서 머물다 갔는데, 어찌나 행복해하던지. 사는 사람은 일상을 사느라 잘 모르지만, 여행객으로서 오는 LA는 최고의 도시인가보다. 오랜만에 남동생과 LA에서 쇼핑도 하고, 핫플레이스에 가니 나 역시 덩달아 여행객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무 즐거웠던 2주였다.
지금으로서는 자매나 다름없는 남매 사이인데, 이게 과연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 남동생이 결혼하는 그 누군가와 내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달렸으리라 본다. 웬만하면 좋은 시언니가 되고 싶은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우리 같은 친한 남매도 있다며, 아들, 딸 남매를 가진 친구들을 위로해본다. ㅎㅎㅎ (얼마나 행복할까, 아들, 딸 다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