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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삶은 시간을 훔쳐간다

by Iris Seok


요새 사람들을 만나면 습관처럼 '한 해가 너무 빨리갔다'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정말요! 올해 특히 시간이 너무 빨리 갔어요"라며 맞받아친다. 매년 나이가 들어갈 수록 새로운 경험이 줄어서 그런가, 왜 이토록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지? 아쉬운 마음만 커져간다.


뇌는 새롭고 특별한 경험은 기억 장치가 오래 저장을 해두는 반면, 반복되는 일상은 기억을 압축 저장하거나 건너 뛴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하는데, 올해는 새로운 경험을 비교적 많이 한 것 같은데도, 시간이 유난히 빨랐다.


2025년이 유독 아쉬운 이유는 올해가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여서이기도 하다. 내가 89년생 뱀띠인지라 괜시레 뱀띠 해가 '나의 해'인 것처럼 여겨졌나보다. 뱀띠에게 뱀띠 해라고 딱히 좋을 것은 없지만서도, 마치 내가 주인공인 특별한 1년이 될 것만 같아 올초부터 긍정적인 기운이 돌았었다.


시간이 야속하게 빨리 흐른 것 같지만서도 사진첩을 열어 올해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었나 싶을 만큼 사진첩이 다채롭게 빼곡하다. 미국에서는 8월에 새학기가 시작되므로 아이들은 올 한 해 동안 학년이 바뀌었다. 유치원생이었던 둘째가 1학년으로, 2학년이었던 첫째가 3학년으로 성장했다. 내겐 마냥 아기였던 두 아이가 점차 한 명의 사람으로 늠름하게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아쉽다. 육아는 그 순간에는 힘들기만한데, 되돌아보면 아름답고 아련하고, 아쉽게만 느껴진다.


만 35세였던 나는 이달 말 내 생일이 지나면, 만 36세가 된다. 서른 여섯이 된다고 생각하니 내가 조금 더 불혹에 가까워졌다는 게 실감난다. 이전의 한국 나이 계산대로였다면 내년의 나는 38세이고, 그건 거의 불혹에 다다른 나이. 마음은 여전히 이십대에 머물러 있는데, 불혹의 나이가 코앞이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나이드신 부모님과 내 곁에 훌쩍 자란 아이들의 모습은 내 나이가 이만큼이나 들었음을 어쩔 수 없이 실감나게 한다.


워킹맘으로 살다보니 '바쁘다'는 말이 삶에서 기본값이 되었다. 바쁜 삶은 매일매일의 감사함과 소중함도 앗아갔다. 그저 눈코 뜰새없이 스케줄만 소화하는 기계식 삶을 살게 되었을 뿐.


2026년에는 하루를 보다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6년은 올해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 수록 소망은 단순해진다. 가족, 친구를 포함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2026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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