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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Oct 06. 2018

춤은 나를 마주하고 상대와 감응하는 일

정직한 놀이이자 소통으로서의 커플댄스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출 수 있나요?” 


춤을 춘다고 하면 대개 돌아오는 반응이다. 이 질문에는 춤에 대한 로망이나 추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되어 있지만 사실 돈을 내고 학원에 등록하거나, 춤을 추는 자신을 거울로 직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은 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는 춤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어도 어떤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부끄러워서 거울 속 나를 외면한다. 잘 해야 한다는 병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덮어놓고 잘 하려는 병이 있다. 춤실력을 가열차게 갈고 닦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 되어야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안무가 아닌, 즉흥의 소셜댄스를 출 때는 상대와의 호흡이나 즐기려는 자세, 음악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데도 칼로 잰 것처럼 춤을 추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느니 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생판 모르는 남의 손을 잡고 눈을 응시하면서 춤추는 일이 쉬울 리는 없지만, 춤도 못 추고 뻣뻣할지라도 자신감 ‘만땅’으로 추는 본고장 사람들을 보면 저런 태도부터 배워야지 싶다. 



결국 서두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고, 춤에 대한 취향이나 생각도 제각각이라서다. 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도 중요한 요소지만 몸을 단련하는데 들인 시간과 실력이 늘 비례하지는 않는다. 물론 재능이 있는 사람은 초반 스타트가 빠르고, 노력하는 사람은 늦되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며 둘 다를 겸비한 사람은 당연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칙이 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심인적 요소만큼 피지컬도 작동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나의 경우 초반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상대의 신호를 미세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이었는데, 어느 정도 커플댄스에 익숙해지자 몸을 잘 써서, 상하체가 따로 노는 바람에 도리어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몸의 균형이 미세하게 맞지 않거나 욕심이 앞서면 어릴 때부터 좋지 않던 어깨나 목이 금세 굳어버려서 잘 되던 동작도 안 될 때가 있었다.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다. 지금 내가 보유한 몸의 형태는 내가 겪은 경험의 역사고 총합이다. 나는 십대 초반부터 어깨가 굽어있었고 오십견 비슷한 통증을 자주 느꼈다.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몸에 대한 억압과 왕따로 인한 트라우마였다. 하지만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힘차고 자유로웠고 순식간에 칭찬과 주목을 받는 위치로 뒤바뀌곤 했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 덕분에 희망의 씨가 말랐던 시기를 버텨냈는지도 모른다. 


잦은 이사와 괴롭힘으로 친구가 없었고 유난히 감정표현을 못 하던 내게는 춤이 곧 친구였다.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자체가 신이 준 (거의 유일한) 선물이었고 그래서 미션스쿨에 진학해 복음을 춤으로 전하는 일에 투신하게 되었다. 학기 중에는 최소한의 학업 외에 연습과 트레이닝에 힘썼고 방학 때는 전국을 다니며 CCM 가수들의 집회에 찬조출연하거나 예배 중의 특가 같은 공연을 했다. 때로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강단 있게 몸을 움직이며 공연을 하는 일이 좋았고 박수의 주인공, 세상의 중심이 나인 양 착각하기도 했다. 


동아리 활동을 중단한 후 졸업 직전에 처음으로 해외를 다녀온 경험이 태국&인도 선교여행이었는데, 어쩌면 이 때가 삶의 변곡점이 되었다. 때는 2000년대 초반, 한류스타가 탄생하기 전이었지만 어리고 춤을 잘 추는 후배들은 거의 아이돌 급의 인기를 누렸고 나는 겸손함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인도의 어느 슬럼에서의 공연을 잊을 수가 없다. 흙도랑에서 오수가 줄줄 흐르고 있는데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온몸으로 일행을 반기며 우리의 손끝 하나에도 집중하고 있었다.

인도의 어느 뒷골목에서 만난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곳에서 춤을 춘 경험이 타문화와의 소통, 존중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메시지를 전하면 너무 흔쾌히 나의 신을 영접해주었다. 그들에게 발에 차일 정도로 널린 존재가 신이라지만, 그 앞에서 내가 믿는 유일신이 속 좁은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순 없었다. 적어도 그들은 가난할지언정 나보다 행복하다는 사실 앞에 말문이 닫혔다. 그때부터 나는 춤을 수단이나 매개로 쓰기보다는 춤과 함께 행복해지는 법을 연습하게 되었다. 믿음보다는 삶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겉보기에 나는 춤을 추는 멋진 사람이었지만 가족 안에서나 우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대 중반을 넘겨 사회에 나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 찾는 동안에는 춤을 추지 못했다. 직업이 생기고 나서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솔로가 아닌 커플댄스인 셈이다.


한 곡의 춤을 상대와 함께 추는 일은 절대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 적당한 상대를 물색하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의 뜻이 통해야 한다. 가까이 다가와서 “한 곡 출까요?”라거나 손을 내미는 등의 절차를 밟아 비로소 플로어에서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음악의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은 상대와의 호흡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양 손을 잡거나 한 손을 상대의 어깨에 올려놓고 박자나 가사, 무드를 표현해본다. 좋은 춤은 일단 이 단계가 잘 맞고 소통에 무리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춤을 추고 나면, 마무리 동작 후에 다시 헤어짐의 인사를 한다. 처음 춤을 춘 상대와 잘 맞지 않았다고 해서 의기소침하거나 상대를 못 추는 사람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는 기회를 주고 난 후에 정말 안 맞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그 후에 해도 된다. 

정신없이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구경하고 있노라면, 이보다 정연하고 흥겨운 난장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더는 상대를 배려하며 움직이고 팔로워는 이를 잘 따라가면서 춤의 포인트를 채우고 풍성한 표현으로 일종의 볼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수컷 공작새가 자신의 날개를 펼치며 그 매무새를 자랑하듯 이 짧은 관계성에서의 뽐내기는 여성의 역할이 되는 것이다. 특히 주로 팔로우를 하는 여성이 능동적이기보다 시키는대로 잘 하는 수동적인 존재면서, 대체로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다. 춤을 출 때의 파워풀한 주체성을 사랑하던 나로서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땀냄새 등의 체취나 손버릇이 안 좋은 리더를 만나면 3분여를 보내는 것도 괴롭다. 원하지 않는 동작에 대한 거절 의사는 에둘러 표현해서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하고, 중도에 춤을 중단하는 일은 최악의 사태를 위해 아껴둔다. 이 모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좋은 몇 곡의 춤이 안 좋은 기억을 상쇄하고, 괜찮은 댄서로 성장하고 있다는 자타의 평가가 더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타인과의 홀딩을 위해 나의 시간과 움직임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애의 발로가 아니면 무엇일까. 이것은 리더든 팔로워든 마찬가지다. 누구와 어떤 춤을 출지 알 수 없는 소셜댄서로서의 기본 자세이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담금질이라 생각하고 초보의 고행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와 한 호흡으로 움직이는 신세계가 펼쳐진다. 커플 댄스의 중독성은 바로 이런 것!  


여전히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움직임을 배우는 데도 거리낌이 없는 나는 또래에 비하면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다. 신념과 자세가 확고하지만 다른 사람과 만나 중간쯤의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할 때는 기꺼이 또 그렇게 한다. 이것이 춤이 내게 알려준 관계의 미학이자 삶에 대한 태도임을 견지하면서 그렇게 나이 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춤은 몸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지만 마음으로 추는 것이며, 내 경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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