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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Mar 06. 2019

트렁크 하나로 여행자처럼 사는 법

집을 떠나 살아보는 일, 그리고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 지인이 여럿이지만 논쟁이 싫어서 혹은 결여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신경 쓰여 결국 누구도 집안에 들이지 않게 된 나는,, 정리되지 않는 소유물들을 포기하지 못해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져버린 경우랄까. 딱히 꼭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그냥 친구를 집에 불러서 뭐라도 해먹일라치면 널브러진 잡동사니와 살림들을 쳐다만 보는 데도 마음이 편치 않고 어딘가 켕기는 기분이었다. 


오롯이 내 힘으로 꾸려가는 내 공간인데도, 정도 이상으로 많은 소유물과 그것들이 얼크러진 상태를 내보이는 것은 보통의 자존감으로는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도 그 상태를 좋아하거나, 개선할 의지가 없지는 않아서 그랬을 터다. 얼굴에 철판 깔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할 만큼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도 못 되었다. 


옷과 책, 잡동사니 무더기에 쌓인 먼지 등으로 인한 알레르기가 만성이 되었기에 건강상의 이유로라도 정리와 정돈은 절실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책 탑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살던 출판계 관계자가 폐병을 앓는 것도 보아온 터였다. 만성적인 의욕부진, 그리고 몸을 움직여 그것들을 해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은 결국 그 상태에 나를 옭아맸고, 여러 가지 불안과 우울을 유발하는 악순환에 갇혀버린 것이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건 최소한의 짐, 그리고 오감을 열고 세상을 만끽할 수 있는 자세다. 


예전 글에도 쓴 것처럼 친한 동생이 와서 함께 집안을 뒤엎고 몇 박스를 내다버리기도 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니 원 상태로 돌아왔고 습관의 개혁이든 뭐든 생활의 변화는 결국 본인에게서 비롯되어야 함을 절감했을 뿐이었다. 참고 견디다 못해 가사 도우미 서비스도 이용해봤고, 특별히 정리정돈을 잘하는 도우미를 요청해 도움도 받아봤지만 증빙서류로 제출해야 하는 영수증을 버리거나, 심지어 한 도우미는 비싼 건 아니지만 아끼던 반지를 가져간 경우도 있어서 다시는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집 안에 CCTV가 없었고, 정황일 뿐 절도로 고발할 만한 증거도 없어서 상담원이 오히려 큰소리치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믿을 만한 사람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며 감시를 받거나, (수락할 가능성은 낮지만) 정리정돈 습관이 있는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사는 것, 그리고 조금씩 줄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아예 필요한 물건만 추려내서 일정 기간 동안 분리해서 살아보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실험도 마지막 방법과 연관되어 있다. 


지금 나는 집을 나와 사는 중이다. 친구가 여행을 떠나 고양이와 닭이 있는 집에 탁묘 겸 와있다. 세탁기는 없지만 볕이 잘 드는 너른 거실과 잘 나뉜 공간, 자로 잰 듯 정돈되지 않았어도 빈티지한 꾸밈 덕에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남편이 프랑스사람이어서, 평범한 장판에 한국적인 소품들이 있어도 묘하게 국적이 소멸된 듯한 느낌도 맘에 든다. 도보 혹은 마을버스로 약 30분 거리인 본집에는 이삼일에 한 번 빨래를 하거나 갈아입을 옷과 길냥이들 사료를 챙기기 위해 들른다. 미세먼지가 연일 최악을 기록하고 있어도 가뜩이나 먼지 냄새가 나는 집은 환기를 하고 공기청정기도 돌려야 한다. 


지금 사는 집에 갖고 온 짐은 단출하다. 가전은 노트북과 핸드폰 충전기가 다고 책 두어 권과 기초화장품 샘플류, 그리고 약간의 색조화장품과 춤출 때 입을 옷 한 벌과 슈즈, 그리고 외투 하나와 잠옷이 전부다. 냉장고에 있던 신선식품과 반찬류도 챙겨와서 간단한 요리도 해먹고 있다. 하루걸러, 혹은 매일 닭이 신선한 유정란을 낳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해 프렌치토스트도 해먹고, 스크램블을 밥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조합원인 두레생협이 지척에 있고 제일 좋아하는 김밥집도 가까워 그때그때 필요한 음식이나 재료를 사올 수도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연습하며,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가끔씩 활용하지만 그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짐’들은 무언지 가려낼 기회인 셈이다. 이 경험을 통해 적은 양의 물건으로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자체도 성과다. 여행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의 연습이듯, 지금의 동네 여행, 내 공간을 떠나 친구 집에서 사는 일은 이 모든 것이 꼭 다 필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해준다. 


여행자의 책상. 여행을 떠나야만 간결한 책상을 가질 수 있었기에, 삶의 공간을  떠나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엇다. 


지금, 내가 발 디딘 곳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일은 내가 매인 곳에 책임져야 할 물건들과 지속해야 할 삶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들 뿐, 근본적으로 내 삶을 바꾸거나 분리하지는 못한다. 이제는 무겁기만 한 짐들을 공간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벗어낼 때가 되었다. 


1단계는 종이책과 디지털화 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 2단계는 2년간 입지 않은 옷과 신발, 3단계는 소소한 소품류와 더 이상 수납하지 않아도 되는 수납용품류와 가구류. 그리고 번외편으로 가죽공예를 위한 가죽과 공구는 열심히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나눠준 후에 남은 것들은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판매하려 한다. 그리고 한 번에 줄이는 것이 어려우니 우선은 꼭 필요한 물건과 가끔 필요하거나 더러 필요할지 모르는 물건으로 분류하는 작업부터 시작하려 한다. 고민이 되는 후자의 물건들은 일정 시간 따로 보관한 후에 필요가 다했다 싶을 때 처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호흡기를 위해 틈새 먼지 흡입을 위한 청소기를 구입해야 할 거 같다. 그리고 로봇청소기가 대신할 수 있는 바닥용 진공청소기는 되살림가게에 보내야지. 


이렇게 공표하고 주변에 소문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나의 욕구를 부끄러워하지는 않되 그것으로 인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뭔가를 사거나 관리하는 삶, 그것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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