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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un 14. 2019

이번 생은 고양 옆에 눕는걸로

캣맘 강제 은퇴 당해도 우정은 계속된다냥

나에겐 길에 사는 친구가 있다. 엄연히 집사가 따로 있는 냐옹이지만 애정하는 동네친구다. 이름은 물물이, 정확한 신상은 모르지만 중년의 아저씨로 추정된다. 코숏치고 굉장히 몸집이 크고 팔다리가 두툼한 편. 잠은 집에서 자는 것 같고 밥과 물, 화장실은 밖에서 해결하는 특이한 케이스다. 산책냥이라고 하기에는 행동반경이 좁아 집 주위에서 멀리 벗어나지도 않는다(고양인 확실히 영역동물인듯!).


처음 만난 건 1~2년 전이고 반려인의 가구 스튜디오 침대 위에서 그루밍을 하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집에는 애가 셋이나 있는데 짐작하기론 일가친척이 집에서 키우는 걸 반대해 가게에서 주로 생활하는 것 같다. 아이와 동물은 함께 키우면 안 된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고나리를 하는 어른이야 흔하니까(할말하않;;).


오며가며 눈인사만 하다가 조금씩 친해져서는 이제 늦은 밤 귀갓길에 만나도 한참을 길에서 부둥부둥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새에 누군가 지를 만지려고 다가오면 도망갔다가 그 사람이 사라지면 다시 나한테 온다. 그 골목에 사는 개 집사님의 말로는 주인 외에 그렇게 친밀하게 구는 걸 처음 봤다고 한다. 그분 강아지도 한참을 물물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물끄러미 보다가 가고, 술 취한 아저씨도 고양이와 날 보고는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제 집으로 가는데, 뒷모습이 제법 쓸쓸했다. 사실 기다리는 '사람'이 없기는 나도 매한가지다. 내 집 근처에 서식하는 냥이들만 밥 주는 닝겐을 기다릴 뿐이다. 얼마 전까지. 


나이 모름, 이름 물물이(뭄무이), 집 근처에 서식하는 내 친구 고양이다. 

난 캣맘이기도 하다. 정 주는 사이, 밥 주는 사이 따로 있다고 볼 수 있다. 밥 주는 아이들은 3대 넘게 사료를 챙겨왔지만 일부러라도 정은 붙이지 않았다. 경계심이 워낙 강한 편이기도 했고 하루에 한 번 사료만 챙기면 그 외의 돌봄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는 사이 식솔이 점점 늘어 이제는 성묘만 5마리 정도, 대가족이 되었다(얼마 전에도 한 녀석이 임신 중인 걸 봤다ㅠㅠ). 개체가 더 늘면 곤란하니 통덫을 놓아 중성화를 하려고도 해봤지만 눈치가 빠르고 경계가 심해 엄하게 다 죽어가는 길냥이만 잡힌 후로는 포기해버렸다.

 

조금 먼 이웃으론, 성산동에 사는 냥친구도 있다. 수다스럽고 그루밍마저 시끄러운 턱시도냥 '미코' 되시겠다. 얘는 아기 때 구조돼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이겨낸 스트릿 출신 집냥이. 고양이들이 으레 그렇듯 창문에 앉아 집밖을 구경하거나, 마당까지 나가 닭장 구경을 즐기는 아이다. 두 번이나 미코네 단기입주 집사 노릇을 했으니 제법 친한 사이라 할 수 있다. 고양이어와 한국어, 불어를 알아듣지만(모르는 척 하지만) 천재라서는 아니고 반려인 국적이 한국인, 프랑스인이기 때문! 하지만 한국의 애묘인들이 고양이를 아기처럼 대하는 것과 달리, 프랑스 남부에서는 강하게 키우는 모양이었다. 내 앞에서는 유독 만나기만 하면 배를 까뒤집고 만져달라고 애옹거리던 미코는, 프랑스 반려인이 귀국하자 잠이 깨기도 전에 침대 위로 올라가 앵앵거렸다가 불어로 욕을 잔뜩 잡쉈다고 한다. 쿄쿄ㅋ 미코도 단기집사와 원래 집사의 교육방침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웠을 듯.   

호젓해보이지만 츄르르츕츠 방정맞게 그루밍을 하는 관종냥, 미코.



성산동 단기집사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망원동. 나름 평화롭던 일상이 깨진 건 동네에 불어닥친 재개발 열풍 때문이었다. 망원2동의 끝자락, 30년이 넘은 공동주택의 재건축이 확정되면서 대거 이사 바람이 불었고 지금 한시적으로 거주하는 주민들은 고령의 차상위계층이 많은 편이다. 언젠가부터 붉은 글씨의 경고조로 ‘고양이 먹이 주지 마시오’ 문구가 나붙더니, 나 말고 다른 곳에서 밥을 챙기러 오던 캣맘이 누군가의 위협으로 사라져버렸다. 언젠가 한 번 마주친 그 아주머니는 멱살 잡힌 적도 있다면서 혀를 내둘렀었다. 


어느 날부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저씨가 등장했다. “밥 주지 말라고, 주지 말란 말이야. 나한테 걸리면 가만 안 둘거야!” 이런 소릴 반복해 동네가 떠나가라 외치면서 인근 맨션을 순회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날로 험악해지면서 캣맘들은 골목을 떠났고 결국 내가 유일한 캣맘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보니 맨정신으로 대낮에도 그러고 다녔고, 옆 동 아주머니와 싸우고 있는 걸 보고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불행한 일이지만 혐오는 무서운 속도로 전염된다. 개저씨의 출현이 잦아지면서 엊그제는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애들에게 돌을 던지는 걸 목격했지만 그저 모르는 고양이인 양 지나쳐야 했다. 등살 덕에 밥을 못 준 지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다. 밥 달라고 울고 보채던 애들은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멀리서 간절한 눈길로 쳐다볼 뿐이다. 


동네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파주로 은평으로 이미 떠난 지 오래다. 2~3년 후면 지금 사는 단지는 재건축 될 것이고, 어차피 나도 이사 나가야 한다. 영역을 빼앗긴 냥 대가족의 운명이 어떨지는 애써 상상하고 싶지 않다. 밥 주는 식구와 정 주는 애들을 두고 올해 중에 이사를 가야 할 듯하다. 물가와 집세가 너무 올랐고 점점 살기마저 팍팍하다. 


근 십년, 정말 오랜 동안 정을 붙여서 이제는 고향 같기도 한 망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때로는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보다 고양이가 훨씬 낫다는 것을 배웠다. ‘망리단’이라는 실체 없는 판타지가 마을을 바꾸는 것과 뜨내기들의 돈을 노린 기획 매장들로 채워지는 것을 보며 결국 서울은 내 고향이 아님을 깨달을 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진 모르겠다. 어딜 가든 한 그릇의 밥, 혹은 잠깐의 온기를 나눌 친구가 생기기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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