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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영 Oct 13. 2022

Tropical Dream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요양을 목적으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시던 당시 어린 나도 자주 데리고 다니셨던 터라 일찍부터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종종 있었다. 아무래도 요양이 목적이라 그랬는지, 찾았던 대부분의 여행지는 섬(나라)이거나 바닷가였고 스스로 여행지를 고를 나이가 됐을 즘의 나 역시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바닷가나 섬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부모님 없이 친구와 해외로 여행을 간 곳은 필리핀 보라카이. 또 다른 친구와는 섬이기만 하면 된다며 어딜 갈까 고민하던 중 서울에서 가깝고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자월도(紫月島)란 곳을 다녀왔었다.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영국도 어쨌든 섬. 도시 보단 휴양지 파인 나는 영국에서 공부하던 당시 스페인을 가더라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같은 유명한 도시들을 제치고, 그 유명한 이비자섬, 마요르카섬을 다시 한번 제치고 그 옆의 메노르카(Menorca)라는 작은 섬을 찾기도 했다. 영국에 있는 나를 보러 온 엄마와의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할 때도 도저히 도시인 리스본에만 있을 수 없어 저 남쪽 해변가 파로(Faro)에서의 느긋한 일정도 빼놓지 않았다. 


2013년 스페인 메노르카. Menorca. Rollei 35T.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는 나만의 여행법 같은 게 생겼는데 여행지를 고를 때면 우선 지도부터 띄워놓고 지형을 확인한다. 몸을 담글 수 있는 곳이든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든 물이 꼭 있었으면 하기에.


해외로 나갔던 가족 여행의 대부분은 겨울에 따뜻한 동남아로 가는 식이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날씨, 에메랄드 빛 바다, 그리고 열대과일을 실컷 즐길 수 있다는 건 마냥 즐거운 일이었다. 2009년 영국으로 공부하러 먼 길을 떠나기 전 태국으로 다녀온 마지막 가족 여행 이후 2018년 말, 거의 10년 만에 동남아를 다시 찾게 되었다. 독일에서 대학원을 가겠다고 한국에서 작업하랴 독일어 공부하랴 그 틈에 돈까지 모으랴, 사람도 많이 만나지 않으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하던 일을 다 정리하고 독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때, 동생의 제안으로 같이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간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첫 숨에 느껴지는 후덥함. 바깥의 덥고 습한 만큼이나 차가운 실내 에어컨 바람. 그보단 점잖게 땀을 날려주는 미지근한 자연풍. 살을 찢어놓을 것 같은 해. 몸 여기저기 주륵- 타고 흘러내리는 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면 금세 바짝 마르는 물기. 소금기 더글더글한 몸이며 머리카락. 시원하게 쏟아지는 스콜. 손으로 입가로 흘러내리는 달달하고 끈적한 과즙. 좋든 싫든 이 모든 끈적-시원-촉촉-축축한 감각들이 상기시켜 주었다. 이국적인 꽃과 나무들, 과일, 예쁜 빛깔의 바다 정도로 기억하는 줄 알았던 덥고 습하고 바다가 있는 곳들에서의 내 기억은 꽤나 촉각적인 것이었다는 걸.


칙칙한 유럽에 오래 있느라 거의 죽어있던 감각들이 너무 오랜만에 자극받았던 걸까? 오랜만의 휴가가 너무 달콤했던 걸까? 아니면 다이빙 때문이었을까? 배를 오래 타고 있다 육지로 나오면 육지 멀미를 하듯, 서울로 돌아와 가만히 내 방 침대에 자려고 누워서도 울렁이던 마음에 혼란스러웠던 밤이 있었다.


2018 필리핀 보홀. Rollei 35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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