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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영 Nov 12. 2022

첫 다이빙

물을 좋아하는 건 물론 수영도 할 줄 알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스노클링도 좋아하면서 그동안 한 번도 다이빙을 해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햇살이 일렁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닌 짙푸른 바닷속 호흡기 소리가 주는 막연한 공포감도 그렇지만 놀러 와서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주렁주렁 장비를 달고 있는 다이버들의 모습도 다이빙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가게 된 다이빙 여행을 앞두고 막상 다이빙에는 어떤 기대도 없었다. 새로운 물놀이를 하겠구나 정도? 중요한 건 오랜만의 휴가라는 것, 그리고 바다가 있는 열대지방의 섬나라로 놀러 간다는 것 그뿐이었다. 


2018년 처음 동생과 다이빙을 하러 간 곳은 필리핀 세부에 위치한 막탄이었다. 동생이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던 한인 다이빙 샵에서 나는 오픈워터(OW) 자격증 과정을, 동생은 그다음 과정인 어드밴스드 오픈워터(AOW) 자격증 과정을 듣고 보홀로 넘어가 펀다이빙*을 하는 일정이었다. 

*교육 목적이 아닌, 다이빙을 위한 다이빙!


본격적으로 자격증 과정을 시작하기 전 건강상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혈관성 두통(편두통)으로 종종 처방 약을 먹는다고 하자 근처 병원에 가서 현지 의사를 봐야 했지만, 곧 무리 없단 확인을 받고 풀장 수업과 이론 수업을 시작했다. 풀장에서는 기본적인 수신호, 장비 탈장착 및 사용법, 부력 조절하는 법 등을 배우고 이론 수업에서는 물속에서 수심에 따라 가해지는 압력과 그로 인해 체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무감압 한계시간(No Decompression Limit), 안전정지 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이론을 배운다. 이론교육과 함께 제한수역(confined water)인 풀장에서의 교육이 끝나면 실제로 바다(open water)에 나가 배웠던 것을 점검해 본다. 


일정 수심 이상의 바다에서 압축된 공기로 호흡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대로 우다다다 발을 굴려 수면 위로 올라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호흡하면서 상승해야 체내에 기포 형태로 쌓인 질소를 충분히 배출할 수 있고 그래야 소위 잠수병이라고도 불리는 감압병을 예방할 수 있다. 다이빙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오기 전 수심 5m 정도 되는 위치에서 3분간 멈춰있다가 나오는 안전정지(safety stop)를 하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다이빙 중 호흡기가 빠졌을 경우, 공기통의 공기가 고갈됐을 경우, 마스크가, 핀이 벗겨졌을 경우 등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수중에서의 대처법을 배우고 실습하는 것이다.  


2018년 필리핀 보홀. Rollei35T


물속으로 들어가면 수압 때문에 귀속에 압박이 가해진다. 이때 이퀄라이징*이라고 불리는 압력 평형 과정을 통해 귀 내외부의 압력을 맞춰줘야 신체에 무리가 오지 않는데, 이 이퀄라이징이 안 돼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종종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퀄라이징은 둘째치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무서워 하강을 못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 물에 별로 공포심이 없던 나는 입수 후 하강까지 무사히 마쳤지만 강사님과 풀장에서 배운 내용을 확인하려 바닷속 모랫바닥에 자리를 잡고는 곧 알 수 있었다. 바닷속에서 마스크를 벗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터널을 지나거나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먹먹해진 귀를 뚫기 위해 모두가 하고 있는 그것과 같은 원리


물속에서 호흡기를 빼고 다시 찾아 무는 것도, 마스크에 물이 찼을 경우 콧바람을 이용해 물을 빼는 것도 전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습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공포심이 생겨날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력조절 잘 해내려 조마조마할 필요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고 운 좋게 1:1로 진행된 수업이었던지라 강사님도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스크를 아예 벗었다 다시 쓰는 과정을 연습하려 마스크를 벗는 순간 꼭 감은 눈가로 차가운 바닷물이 느껴졌고 멀쩡히 호흡기로 숨을 쉴 수 있음에도 갑작스레 숨이 가빠오는 걸 느꼈다. 눈을 감자 눈앞에 보이던 바다는 사라지고 대신 차가운 눈가에 바다의 거대함이 밀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나 자신이 그 거대함 속에 내던져졌다는 것 말곤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외부 장치에 의존해 겨우 숨만 쉴 줄 알던 한 마리의 육지 동물은 처음 마주한 바다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얼른 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렌즈를 끼고 있던 눈으로 바다에서 꾸역꾸역 눈을 떴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어떻게 마스크를 다시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강사님께서 심호흡을 유도해 다행히 흥분상태는 곧 가라앉힐 수 있었지만 물속에서 멀쩡히 호흡기를 물고도 숨이 가빠오던 경험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연습을 하러 처음 바닷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 중 부력 조절을 못 해 성게가 바로 아래에 있음을 알고도 그저 가라앉는 것밖엔 할 수 없어 허벅지에 보라색으로 성게 가시의 흔적을 남겼던 것까지.


이래저래 물속에서 필요한 스킬 테스트를 마치고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을 때쯤, 유영을 하다 고개를 들어 보았다. 머리 위로 자그마한 물살이들 몇몇이 모여 헤엄쳐 지나가고 수면에 해가 비쳐 어른거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 모든 게 처음이라 신기했을 당시에도 그렇게 화려하거나 멋있다고 느낄만한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닷속에서 한껏 늘어나 있는 시간이, 가라앉았다고 해야 할지 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를 깊은 물속에서의 내 몸이, 땅 위에서와는 달리 전달되는 소리와 방향 감각이 가져오는 세상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두 눈에 담은 첫 장면이었다. 


울렁이던 서울에서의 밤은 여기서 시작된 걸지 모르겠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막 배에서 내린 사람처럼 침대 위에서 보이는 세상이 울렁이고 있었다. 그런 밤들이 있고 머지않아 결심했다. 유학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조금(..) 털어 동남아 몇몇 군데를 돌며 다이빙 여행을 해 보기로..


부끄럽지만 귀여운 내 로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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