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다 쓴 필름은 꼬박이 다 현상을 해 뒀다 생각했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다 쓴 필름 하나가 방에서 굴러 다니고 있었다. 정체 모를 필름이 궁금했을 법도 했지만 대체 뭐가 찍혔는지 전혀 감도 오지 않아서 별생각 없이 현상을 맡겼다. 결과물이 나왔단 연락을 받곤 곧장 컴퓨터로 결과물을 열어보니 순간 알아볼 수 없는 초록빛 이미지들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언뜻 눈에 익은 장면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곧 인물사진이 나왔다. 우리 가족이다. 아..! 무려 2008년 태국에 가서 찍었던 사진들. 그것도 얼마 전 다녀온 피피섬에서 2008년 찍은 사진들.
2009년 여름,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이던 나는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멀리 영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그전에 가족 다 같이 여행을 가자고,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2008년 초 다녀온 것이 태국 피피섬이었다. 그리고 마침 2020년 초에 다이빙 여행지로 계획했던 것을 코로나가 터지며 말아먹고는 올해 여름 겨우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 생생하게 눈에 담고 온 곳이 그 오랜 시간 필름 속에 담겨 내 방 어딘가를 굴러 다니고 있었을 줄이야. 여행을 마치고 섬을 나오기 직전 검사한 코로나 검사에서 난생처음 양성이 뜨는 바람에 요양 ver. 2차 여행까지 마치고 온 최근의 피피섬 여행기는 다음에 풀어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