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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영 Nov 26. 2022

가장 최근 다녀온 다이빙 (독일편)

(독일에서 다이빙 한 얘기는 아님)


얼마 전 3일짜리 통역 일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연사* 일정 두 개 + 조교 일 마감 + 번역 과제 마감 + 평소 하는 스터디**까지 겹치는 지옥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어떻게 이렇게 짠 것처럼 데드라인이 다들 몰려있던지. 하나를 끝내면 다른 하나의 끝을 향해 또 달려야 하는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고 겨우 숨통이 트이자 곧장 골골대기 시작했다. 지난번 난생처음 코로나에 걸렸던 게 3개월 정도 전이니 벌써 재감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가도 몸이 으슬으슬하고 목이 괜히 아픈 듯한 게 혹시 또 코로나 아닌가 싶어 집에 굴러다니는 자가진단 키트로 음성임을 확인해야 했던 최근이었다.

*통대(통역번역대학원)에서는 통역 수업 진행을 위한 지문과 해당 지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준비를 학생들이 직접 돌아가면서 하게 되는데 해당 학생을 연사演士라 부른다. 텍스트만 준비해 가는 것이 아니라 통역을 위한 배경지식 조사+정리한 내용을 브리핑해 주어야 하며 다른 학생들의 통역에 대해 좋은 대안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통역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파트너와 서로 지문을 읽어주고 서로의 통역을 크리틱 해 주는 '스터디'를 빼놓을 수 없다! 수업과는 별개로 진행하는 일종의 개인 훈련 같은 것.


2022년 여름, 통대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또다시 동생과 다이빙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가 터진 뒤 처음 나간 해외여행이자 무려 2.5년 만의 다이빙이었다. 이번 목적지는 태국의 피피섬. 뒷얘기를 먼저 하자면 이 피피섬에서 코로나가 걸리는 바람에 무려 10일간의 격리를 마치고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그랬던 이 피피섬에는 가기도 전부터 코로나에 얽힌 사연이 있었는데..

피피에서 격리생활을 했던 곳. 무려 오션뷰에 발코니로 나갈 수도 있었다!


때는 2020년 초 코로나가 스멀스멀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낼 즈음. 당시 나는 독일에 있었다. 독일에서 대학원을 가려고 한국에 있는 동안 목돈도 조금 모아뒀고 필요한 독일어 공부까지 다 끝냈으니, 학교 지원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독일에서 미리 적응도 하고 있을 겸 만 서른 하나가 되기 바로 며칠 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들고 베를린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집 구하랴, 일 구하랴(그것도 편한 영어 놔두고 독일어 더 연습하겠다고 독일어를 써야 하는 일로 굳이굳이), 작업하랴, 정성 들인 독일어로 교수님께 메일 보내랴, 청강하랴 많은 일들을 짧은 시간 안에 헤쳐가고 있던 어느 날 초저녁, 잠시 잠들었다 일어났더니 온 세상이 휘청이고 있었다. 머리를 살짝만 움직여도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그대로 액체가 된 것 마냥 흔들거렸다. 세상 처음 느껴보는 어지러움에 요즘 고기를 너무 멀리 했던 걸까 생각하며 오밤중에 일단 버거부터 시켰다(?). 한창 먹고 났는데 어지러움에 그대로 게워버리고 나니 이만하면 머리나 어디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무서워져 저녁 12시가 넘은 시각 택시를 타고 혼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일단 채혈을 하고선 상태를 봐줄 수 있는 의사(전문의)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눈앞이 핑핑 도는 것이 무서워 응급실 복도에 놓인 침대 위에서 꼼짝없이 천장만 보고 있던 나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내 몸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만 이어갈 뿐이었다.


그 길던 밤 중간중간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아직 수련 중인 듯한 의사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왔는데 재밌는 걸 알려줬다. 독일어로 얘기하다가 내가 '어지러움Schwindel'이라 얘기를 하니 그것이 dizziness냐 vertigo냐 물어오던 것. 영어로는 둘이 구분되지만 독일어로는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한국말로도 구분이 안 되지 않던가? 어지러움과 현기증 정도려나? 그렇다고 해도 그 둘의 차이가 잘 와 닿지 않는 나로선 구분이 안 된다고 봐야 한다. 파란색과 남색을 따로 구분하는 단어가 없는 문화권에서는 파란색과 남색을 실제로 눈으로 봐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언어학 실험 결과를 어디서 주워 들었는데.. 분명 알고 있다 생각했던 저 두 단어에 애초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나 보다. 이렇게 또 배웠다.

먹은 것도 없이 병원에서 밤을 새고는 아무나 붙들고 너무 배고프다 했더니 받은 아침.. 이곳은 도이칠란트.. 그래도 맛남

아침 8-9시가 다 되어 겨우 병원 문이 열리고는 이 과 저 과를 돌며 병원 캠퍼스를 뺑뺑 돌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보게 된 신경과 의사는 나를 침대에 앉히더니 고개를 한쪽으로 꺾어 상체를 뒤로 훅 제껴보라며 신기한 주문을 했는데, 또다시 미친 듯 흔들리는 풍경을 마주해야 했던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금세 병명을 짚어냈다. 바로 BPPV, 이석증이었다. 진단과정이 너무 신기해서 눈을 보고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더니 눈이 흔들리는 걸 보면 알 수 있다길래 나도 그 눈이 보고 싶어 집에 와서 영상도 찾아봤다. 그래.. 눈이 그렇게 움직이는데 세상이 멀쩡히 보일 리가..


이 이석증을 기점으로 한 달 내내 온몸이 구석구석 돌아가며 아팠다. 많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한 달 내내 몸이 불편했는데, 코로나까지 걸리기라도 하면 어디서 어떻게 무슨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조심하려 예민해져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금방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쯤 에어비앤비에서는 광고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프로그램인 '사바티컬Sabbatical'로, 매년 목적지를 달리해 소수의 참가자를 뽑고 해당 목적지에서 지역과 관련한 프로그램 활동을 하는 것인데 2020년엔 바하마로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바하마 사바티컬에는 윤리적 어업, 지역 전통 식문화 체험, 산호 보존 프로그램(다이빙!) 등이 포함돼 있었다. 따뜻한 섬.. 바다.. 산호 보존..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지원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뽑힐 가능성이야 낮겠지만 만약에라도 뽑힌다면 내가 지원하려던 대학원 중 하나의 면접 시기와 겹친다는 거였다.  


갈등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곧 혼란스러웠다. 얼마를 준비해 온 2회 차 유학인데, 그것도 남들보다 덜 버는 주제에 덜 쓰고 더 모으며 시간은 쪼개고 쪼개서 일하고 공부하고 작업하면서 힘들여 준비해 밟은 유학길인데 이런 프로그램 하나로 갈등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마음과 또 한 편으로는, 맞고 아니고는 나한테 달린 거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에. 사실 사바티컬과 일정이 겹치던 대학원은 청강하고 있던 대학원도 아니었고 우선순위가 낮은 학교이긴 했지만 바하마 드림 앞에 잠시나마 멈칫했던 순간은 스스로에게도 꽤나 당황스러웠고 몸과 마음은 한창 지쳐있었기에 일단은 생각을 비우고 쉬기로 했다. 나에겐 아직 남아있는(?) 유학 자금이 있으니까.. 최대한 가까운 미래만을 생각하고 싶었다.

대충 안 뽑혔단 얘기

그러다 보니 바하마 드림이 무산되고도 어딘가를 가긴 가야겠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고른 행선지가 바로 태국의 피피섬이었다. 당시만 해도 아는 분이 피피섬의 다이빙 샵에서 일하고 있을 때여서 누구라도 있는 곳에서, 따뜻한 해와 바다를 곁에 두고 다이빙도 간간히 하며 한 달을 조용히 쉬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산호 복원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것이 마음에 드는 다이빙 샵도 찾아 뒀고 한 달 동안 작은 섬에 머물며 뭘 하고 지낼지 계획을 짜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기력을 차려보던 때였다.


그러던 것이 2020년 2-3월. 코로나가 점점 기승을 부리고 독일에서도 슬슬 패닉바잉이 시작되는 모습이 보이니 피피 드림마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족이 있는 서울 집에서 한 달 정도 쉬다 오기로 결정했다. 이때의 고됐던 방한訪韓길을 나는 지금까지도 베를린 엑소더스..라 부르는데, 비행 편이 출발 전날 코로나로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정신없이 항공편을 찾아 부랴부랴 예약까지 마쳐야 했다. 게다가 도저히 항공편이 없어서 베를린에서 헬싱키, 헬싱키에서 방콕, 방콕에서 서울까지 가는 세 편의 항공편을 각각 따로 끊은 경우이다 보니, 비행기에서 내렸다 탈 때마다 매번 입국 심사, 출국 심사를 거치며 짐을 부치고 또 찾아야 했던 것. 그렇게 한국에 들어왔던 것이 독일을 영영 떠나게 된 것일 줄은 몰랐다.


오랜 시간 머물렀던 헬싱키 반타Vaanta 공항에서. 2020. Minolta 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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